루소는 1749년 학문과 예술의 발전이 인간의 도덕성을 타락시켜왔음을 주장하는 현상논문을 발표, 이로 인해 일약 프랑스는 물론 온 유럽에서 촉망받는 지성인으로 떠 오르게 되었다.

이 논문이「학술예술론」이며 여기서 ‘인간은 자연적으로 선하게 태어났으나 사회에서 타락되었다’라는 루소 철학이 대원칙이 선언적으로 천명되고 있다.

루소의 주요저작인 「인간불평등기원론」은 1753년 미종 아카데미에서 현상 공모한‘인간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자연법에 의해 인저오디는가?’라는 주제에 답하기 위해 쓰여졌지만 이미 당대의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루소는 수상을 목표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현상주제에서 받은 영감을 글로 표현하려는 욕구에서 이 논문을 쓰게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루소는 인간불평등의 기원을 생각하기 위하여 숲 속에서 깊은 사색에 빠진다.

“그 나머지 시간에는 숲 속 깊숙이 돌아다니면서 나는 원시시대의 자취를 찾고 발견했으며 원시시대의 역사를 사랑스럽게 탐색했다.

나는 인간의 무모한 거짓말을 부숴 버렸다.

나는 감히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했으며 인간의 본성을 왜곡시킨 시간과 사물의 과정을 추구하고자 했다.

또한 인위적 인간과 자연적 인간을 비교함으로써 소위 말해지는 인간의 완성속에 불행의 참된 원인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나의 영혼은 이런 숭고한 명상에 고조되어 신에게까지 비상하였다.

(고백록 8권)”이러한 숭고한 명상의 결과가 1754년에 쓰여지고 그 다음 해에 출판된「인간불평등기원론」인 것이다.

루소의 철학세계에서「인간불평등기원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학술예술론」에서 문명에 대한 비판이 수사학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면「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분석은 보다 이론적으로 보다 철학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루소는 가장 유용하지만 가장 덜 발달된 지식분야가 인간에 관한 지식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추론 하기 시작한다.

그가 발견한 자연인은 항상 타인과 전쟁상태에 있는 홉스적인 인간도 무한한 사유욕을 지닌 로크적인 인간도 아니었다.

그는 집도 가족도 이성도 말도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자유롭게 혼자서 살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느끼는 평화로운 원시적 인간의 모습에서 자연인의 원형을 찾았다.

이성이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에 있는 자연인은 첫째 사유를 의식한다는 점, 둘째 완전을 지향해 나가는 능력인‘완전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루소는 완전가능성에 의해서 인간이 신체적·도덕적으로 진화해 왔음을 주장하면서 완전가능성이 올바르게 실현되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았는가의 여부에 따라 덕과 악덕, 계몽과 오류 등이 역사상에 생성되어 왔다고 통찰력있게 지적한다.

다시 말해 완전가능성은 덕과 지혜의 원천이 될 수도 있고 악덕과 오류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이상도 완전가능성이 실현된 한 양태에 불과한 것이다.

이성의 차원이 아니라 감성의 차원에 존재하는 자연인은 자기보존의 욕구와 자연적 동정심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의해서 행동하게 된다.

자연인은 기본적인 욕구만을 지니기 때문에 타인의 생존을 해함이 없어도 자신을 보존할 수 있으며 약하고 고통받는 존재에 대해서 느끼는 동정심은 광폭할 수도 있는 자기보존의 욕구를 완화시키는 역활을 하기 때문에 자연인은 타인을 적극적으로 해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의미에서 선하게 된다.

자연적인 선함을 지니고 있던 인간은 완전 가능성이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씩 실현됨에 따라 상상력과 이성을 지니게 되고 소유와 사라의 관념이 발달하자 인간은 집과 가축을 갖게 되었으며 생존의 원천으로서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인간의 불평등은 소유의 관념에서 비롯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불평등은 기만적인 사회계약을 통하여 성립된 재산권과 법이라는 토대에서 영원히 지속된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행복한 자연인이었으나 완전가능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실현됨에 따라 사회인으로서 사슴에 얽매이고 불평등하고 불행하게 된 것이다.

사회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루소는“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이 외침은 시대를 거슬러 원시시대로 돌아가거나 자연적인 환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자연인이 지녔던 자연적인 선함과 행복을 올바른 이성­그것은 결국 양심의 지도를 받는 이성인데­의 도움을 빌어 현 사회에서 복구하자는 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모를 때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교육되어야 하는지 어떤 정치체제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감을 상실하게 된다.

루소는「학문예술론」과「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의‘자연(Nature)’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오하게 통찰함으로써 인간이 지향해야 할바가 무엇인지를 독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 루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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