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소절로 시작해 볼까요?” 열 댓명의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대형강의실. 강단에서 내려온 김영옥강사(숙명여대 독어독문학과)가 숨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운 책상 위에 걸터앉아 김혜순의 시 중, 잡히는 대로‘참혹’을 읽기 시작한다.

“(상략) 그녀는 적군의 아이를 가진 그녀는 낮잠만 자는 그녀는 배가 자꾸만 불러오는 그녀는 (중략) 아기가 나오려 하자 25층 꼭대기로 올라간 그녀는 (중략) 동물의 세계 카메라는 사자에 쫓기는 누우 한마리 쫓아간다 누우는 새끼를 낳다 사자떼에 쫓기고 말았다 (중략) 새끼 누우는 태어나다 말고 놀라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스스로 죽은 새끼를 자궁에서 끌어내지 못하는 누우는, 손이 없는 누우는 (중략) 이미 누우떼들은 강을 건너간지 오래, 혼자 남은 어미 누우의 눈이 점점 커진다” 아무거나 읽어도 시어와 그 언어적 표현에서 화자는 여성임이 드러나고 독자는 새로운 관점과 서술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에 더욱 활발해진 여성작가의 활동. ‘여성작가를 잡아야 베스트셀러를 낳을 수 있다’는 출판계의 유행어는 이를 대변해준다.

김강사는‘90년대 한국여성문학 속에 나타난 여성자아’에 대한 9일(월) 제2대학 강연회에서 90년대의 다양한 여성적 글쓰기가 표현하고 있는 주제·언어·형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여성문학 속에서 여성자아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으며 여성작가의 눈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녀는 먼저 오정희의「옛우물」을 언급한다.

목욕탕에서 할머니의 몸에 그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딸, 손녀, 그리고 손녀의 손녀…가 오버랩돼 보여지는 장면에서 독자는 시간에 대한 다른 방식의 이해를 습득할 수 있다.

흔히 남성들은 개별자로서의 몸,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개체로서의 몸을 바라보지만 여성적 화자는 자궁 안에 무수한 생명이 겹쳐 있는 통시적 몸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단순히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모성보호나 가부장제에서 강요되는 모성본능을 의미하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선사한다.

이제까지 가부장제에 얽매인 모성을 해체하려는 문학적 시도도 있었지만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곱지만은 않다.

대표격인「마요네즈」는 내면의 깊은 성찰이나 고민이 우러나오기 보다 현상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어 오히려 괴리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또 동성애, 특히 여성들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플라스틱 섹스」역시 표피적으로 겉돌고 있어 실재로 존해잘 수 있는 갈등과 모순을 진지하게 다뤄주지 못하고 있다.

모성의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성해방의 문제, 은희경의 작품은 섹스를 할 때 눈치를 보지 않는 여성을 성 해방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는데 김강사는 그런기계적인 해석보다‘눈치를 보는 이유’에 대해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편, 계층여성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전경린과 공선옥. 이들의 소설에는 자신을 계몽시켜 운동가로 나아가는 노동자, 그러나 지식인계층으로 상승할 순 없는 하위계층여성들의 자의시과 신분의 강등이 나타나 있다.

전경린은「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에는 초국 가자본주의와 가부장제 하에서 권력체계에 중첩된 하위주체로서의 여성을 뛰어난 필체로 철저히 그려내고 있다.

여성이 역사를 , 여성이 사회를, 여성이 여성을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은 기존의 형식과 이해방식을 벗어 남에서 출발한다.

아직 본질을 제대로 파고들지 못하고 겉멋만으로 상품화되고 있는 여성문학도 많지만 진지한 성찰로 여성의 모습과 내면이 스케치될수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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