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버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이 유명한 수식사는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를 가리키는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로서‘역사’라는 문학형식이 바로 그의 저술「히스토리아이」( Historiai) 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은, 2천년이 넘도록 이론의 여지없이 통용되어 왔다.

그런데 헤로도토스의‘아버지로서의 권위’가 처음으로 과거사를‘이야기’한데 있다면, 대체 그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 획기적이었던가? 과거사의 기록으로 말하자면 오리엔트에는 헤로도토스보다 2천년 이상 앞서는 것들이 있었다.

왕의 이름들과 그들의 위업들을 기록한 왕명표들, 혹은 한 해마다 천재 지변, 사건들을 기록한 연대기 등. 그러나 거기서는 좀처럼 사건들의 전말을 읽을 수 없다.

이야기란 모름지기 전말이 있는 법이며 또 기왕이면 다소 복잡해야 한다.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과거사를 다룬 방식은 바로 이점에서 전과 달랐다.

그것은 과거 사건을 복잡한 인과관계 속에서 기록한 즉 전말이 있는 최초의 옛날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 이야기의 또 한가지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사실 그저 옛날 이야기라면 예컨대 호메로스의 서사시처럼 기존의 것들이 있었따. 하지만 그 서사시는 신들과 영웅들의 얘기이며 특히 사건의 전말을 정하는 것은 제우스의 뜻이었다.

요컨대 호메로스 이야기의 요체는 신화들이며 인간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었따. 헤로도토스는 바로 그 중심을 바꾼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그는 신들이 아니라 인간들이 일으키고 또 인간 스스로 해결하는 과거사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발상의 전환이 철저하리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모든 혁신이 그렇듯 그의 이야기에는 아직 과거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즉 그는 더러 신화를 말하고 심지어 신들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인본주의(humanism)의 관점에서 옜날 이야기를 쓴 최초의 작가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헤로도토스를 그처럼 새로운 이야기꾼, 다시 말해 역사의 아버지로 태어나게 한 힘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가 태어나 자란 곳, 즉 소아시아(오늘의 터어키) 서해안의 그리스인 거류지의 지적환경이요, 다른 하나는 특이한 삶의 역정을 통한 개인적 체험이다.

그 무렵 소아시아는 그리스 세계의 지적 격동의 진원지였다.

이질적인 풍토와 풍습을 가진 아시아인들을 접하면서 그곳의 그리스인들은 신화에 기초한 그리스 중심적 우주관에 대해 맹신을 거부하고 합리적·보편적인 지식을 탐색했다.

헤로도토스에게 그런 탐구의 자세는 말하자면 지적 유사같은 것이었다.

그 탐구 정신은 그가 정치적 이유로 부득이 고국을 떠나야 했을 때 한층 고양될 계기를 얻게 된다.

그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두루 여행했으며 그의 정신은 마치 스폰지가 물을 머금듯 엄청난 민족지적 절정에 이르고, 또 그리스 도처에서 엘리트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다.

사람( 즉 시민) 들이 자신들의 운명과 역사의 흐름을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적 절차나 또 문제를 분석하고 토론하며 설득하는 소피스트들의 기술은, 그의 세상 보는 눈을 바꾸어 준 체험이었다.

그런 체험적 지적 자산에 비추어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출생 무렵에 일어난 그리스 역사상 최대의 사건, 즉 페르시아 전쟁을 이야기 거리로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여행에서 보고들은 것을 통해 페르시아 제국 구석구석을 웬만큼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페르시아 전쟁의 전단을 제공한 소아시아의 그리스 출신이 아니던가? 요컨대 그는 페르시아가 어떻게 동방을 석권하고 그리스 본토까지 넘보게 되었는가, 다시 말해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에 누구보다도 적합한 조건을 갖춘 작가였다.

그의 책, 「히스토리아이」는 ‘탐구한 결과’라는 본래 뜻대로 그렇게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 탐구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책은 모두 9권이다.

그래서 혹자는 각 권에 9명의 뮤즈 여신들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페르시아 전쟁을 얘기함이 목표지만, 정작 전쟁사는 6권부터 시작된다.

처음 다섯 권은 페르시아 전쟁 전까지 페르시아의 팽창사 같은 것으로 그의 아시아·아프리카 견문이 큰 힘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페르시아와의 연관을 제외하면 그 다섯권에서 이야기의 통일성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그저 여러 지역과 종족들에 대한 민족지적 논문들을 엮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에 비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과정이 묘사된 6­9권은 훨씬 통일성이 뚜렷하다.

부연하면, 책의 앞부분은 마치 잡다한 여행기를 늘어놓은 듯한 반면 뒷부분은 아테네에서의 정치토론처럼 분석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그 뒷부분은 헤로도토스 뒤를 잇는 그리스 최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역사서술에 접근해있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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