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목) 법학연구소에서 개최한 네일 맥코믹(Neil MacCormick) 영국 에딘버러(Edinburgh) 대학 흠정석좌 교수의 특별강연 ‘범죄와 형벌: 국가의 권리인가? 개인의 권리인가?’가 열렸다.

근대 형사사법제도가 확립되면서 범죄의 피해자는 형사사법제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복수는 금지되고 형벌권은 국가가 독점적으로 행사했다.

그런데 오늘날 일반여론이나 대중메체에서는 피해자(내지 피해자 가족)의 피해와 슬픔, 분노 등을 부각시키면서, 국가의 형벌권은 이를 고려하여 경한 형벌을 가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보복감정을 해소해 줄 정도의 중한 형벌을 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 형벌권의 근거와 한계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근대국가의 구성원리를 구상했던 사상가들은 어떤 근거 위에서 이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것인가. 이에는 존 로크(John Locke)의 사상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로크의 국가 형벌권론은 사회계약론, 구체적으로는 그의‘자연상태론’에 입각하고 있다.

그는 자연상태를 인간이 ‘생명, 자유, 재산’권을 갖는 상태로 생각했다.

신의 목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은 생명을 가지며, 그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자유롭게 노동을 할 수 있으며, 이렇한 노동의 결과 인간은 재산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침해를 받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무방비상태에 있다.

따라서 저연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스스로 경계하는 것 뿐이며 일단 침해를 당한 경우에는 피해자 스스로가 보복을 하는 것 뿐인데, 이는 또다른 보복을 낳아 결국 끝없는 복수의 연속으로 귀결된다.

이와 같이 자연상테에서는 각 인간은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 이외에 형벌의 집행권을 갖게 되는데 이 제4의 권리의 행사는 자연상태를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계약을 맺어 시민정부를 구성하는데 이는 마치 사설 보안회사와 같은 것이어서, 계약자들이 위임을 받아 경비를 하고 잃은 것을 되찾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형벌권은을 이러한 관점에서 보는 것은, 손해배상이나 원상회복과 같은 민사적 구제를 설명하는데는 의의가 있으나, 가해자엥게 일정한 해악을 가하는 ‘형벌’을 정당화하거나 형벌을 가하는 기국가 갖는 권위를 설명하는데에는 불충분하다.

이에 비하여 경제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이 분야에도 중요한 성찰을 남기고 있다.

(「법학에 관한 강의」). 그에 의하면 인간은 로크가 보는 것처럼 이성에 기초하여 합리적으로만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존재이며, 바로 이 ‘감정’으로부터 그는 형벌제도의 정당화 논거를 도출하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인간의 감정능력은 타인의 느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이다.

(오늘날 이는 일반적으로 감정이입이라고 불리운다). 타인이 다틴 것을 볼 때, 나에게는 아무런 실제적인 아픔이 없지만 나는 그의 아픔을 느낄 수가 있다.

또 타인의 그 아픔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 고의적으로 야기된 것이라면, 그의 아픔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가해자에 대한 분노도 동시에 느낀다.

그런데 인간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가해자 자신도 피해자의 아픔과 분노를 느끼고, 따라서 자기가 받은 벌이 그 아픔과 분노보다 더 크다면 이를 부당하게 여기고 다시 보복을 가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또다른 보복과 분노를 남기지 않는 벌을 가하는 데에는 이런한 인간의 공감의 능력을 전제로 하여 형성된 ‘공정한 관망자’로서의 제3자를 필요로 하게 되고 이것이 형벌권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이라는 것이다.

이는 형벌이라는 가해를 함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도덕감정에 의하여 정당화되며, 그 공정성으로 인하여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로크의 이론은 기해자에 대하여 해악을 부과하는 형벌을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으며, 아담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에 입각한 공정한 관망자로서의 국가의 관념이 오히려 이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피해자의 피해와 슬픔과 분노를 부각시키면서 범죄자를 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의 경향은 형벌을 거칠은 보복의 하나로 보는 태도로서 타당하지 않으며, 형벌을 민사적으로 구제(손해배상, 원상회복)와 같은 맥락에서 정당화하는 태도 역시 타당하지 않다.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공정한 관망자로서의 국가가 행사하는 형벌이야 말로 정당화되는 형벌이며,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이러한 정당화논거의 기반을 제세해 주는 것이다.

짧은 강연이였기 때문에 세밀한 논거의 제시나 논증이 아쉬웠지만, 국가 형벌권의 정당화논거를 전통적인 방식대로 칸트나 헤겔, 홉스나 로크에서 찾지 않고, 스코틀랜드의 도덕주의자인 아담 스미스에서 찾으려고 시도하고 그의 논의를 재구성한 점은 이에 관한 논의를 환기한 높이 살만한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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