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항쟁 10주년 기념 학술대토론회-‘이데올로기와 운동’

작년,진보적 학술계의 초점이 됐던 논의는 통일과 노동법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현실사회의 직접적인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논의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지만 한정된 영역에서만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온갖 사회문제가 노동법 파동·한보 부도·대선자금등의 형태로 사회전면에 곪아 터져 나온 97년 현재에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의 논의가 행해지고 있다.

앞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과정속에서 시민사회라 불리우든 노동자계급이라 불리우든 간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진행된 일종의 실천이 목격됐기 때문에 특히 실처노가 연결된 담론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런 가운데 26일(월)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10주년 기념 학술 대토론회 3부 ‘한국사회의 민주화’중 주제토론 ‘이데올로기와 운동’에서 실천과 관현된 담론을 총망라하고 오늘의 실천적 담론을모색한다는 의의에서 주목할 만한 논문 2편이 발표됐다.

80년대를 풍미했던 사회구성체·주체사상 논쟁등에서 90년대 진보진영의 ‘위기의시대’에 행해진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 이론·탈근대적 문제설정 등에 이르기 까지 한국 사회의 변화와 맞물리며 전개된 철학적 논의들이 그 주축을 이룬다.

이는 87년 이후 한국사회의 철학적·사상적 논쟁에 대한 정리이자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김재현교수(한국철학사상연구회, 대구대 교수)의 ‘사회구성체 논쟁과 철학적 담론의 변화-실천철학적 담론을 중심으로’에서는 철학적 논쟁의 폭을 한정짓지 않기 위해 실천적 차원에서 담론데 접근한다.

그가 정리한 철학 논쟁사를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87년 전후 출판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논의의 전면에 등장한 맑스주의가 한국사회에 맞게 적용되면서 사회구성체·사회과학방법론·주체사상논쟁이 일차적으로 전개됐다.

그리고 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알튀세르의 구조적 맑스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맑스주의가 이론적으로 헤겔적 총체성에 입각한 목적론적 역사관과 경제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이었기 때문데 현실사회의 다양한 지배권력 관계를 해명할 수 없었고, 실천적으로는 사회구성테의 변화로 노동운동과 맑스주의의 결합이 의문시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교수의 분석에 대한 이해를 위해 모순론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헤겔적 총체성이란 한국사회를 규정지음에 있어 맑스의 토대-상부구조론에 입각해서 현실자본주의 사회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같은 인식을 통해 노동계급의 당파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루카치의 철학적 해석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이 낳은 사회적 모순·계급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요구와 맞물리면서 맑스이론 수용과정에서 적즈쩍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고도화가 진행되면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으로 지배계급이 대치된다는 목적존적 역사관과 경제주의적 관점은 설득력을 읽어버리게 된다.

이에 대한 모색으로 이뤄진 것이 알튀세르의 ‘모순의 중층결정’을 바탕으로 제기된 맑스주의의 전화이다.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는 현대사회에서는 정치·경제 중심의 갈등뿐만 아니라 문화·환경 등 사회 여러곳에서 사회의 갈등요소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10년간 ‘실천적 담론’의 흐름은 맑스주의적 담론의 악화와 퇴조, 수용과정의 격화된 논쟁의 고듭하면서 맑스주의적 실천이 관념화됐다고 평가해 볼 수 있다.

김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이론적인 논의를 구체적인 매개과정 없이 바로 실천에 적용하려고 했던 ‘이론의 실천화’가 담론차원에서 지배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김교수의 논문이 10년간의 철학적 논의들에 대해 정리하고 평가하는 작업이었다면 이용주·허재영(한국사회과학연구소)의 ‘이론지형의 변화-맑스주의의 위기와 탈근대적 문제설정’은 오늘의 상황에서 자주 언급되는 논의들을 다룬다.

탈근대적 문제설정이란 자본주의적 문제설정에서 노동-자본의 관계를 부각시켰던 것와 달리 하나의 일관된 논점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새롭게 제기된 것들 중에서 쟁점을 꼽으라면 ‘주체’와‘차이’라는 개념이다.

물질적인 생산양식이라는 규정을 넘어 진행된 주체형성론은 운동 내부의 파시즘을 극복할 수 있고 노동운동이 자본축의 주체성의 정치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는 가능성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차이는 새로움의 생성을 추구한다.

필자들은 이러한 논의가 하나의 비판적 인식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열려있는 문제설정이라고 주장한다.

즉 모든 변혁이론을 수정주의·교조주의·관념론 등의 이름으로 단죄하며 극단적인 폐쇄성을 가졌던 맑스주의와 달리 다른 이론틀이나 사유와 접속하는 것이 탈근대적 문제설정에서 더 힘있게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종의 ‘체계’가 아닌 새로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기동성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구와 달리 비판이론의 수용이 먼저 이뤄진후 맑스주의를 받아들였고, 곧이어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해체된 담론이 등장하게 된 한국사회의 철학적·사상적 과정에 대한 두편의 논문은 학술운동과 진보진영 내부의 겸허한 반성과 함께 진행됐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그것은 담론이 넘쳐나는 오늘날 그동안의 담론이 왜 담론으로만 머물 수 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폐쇄적으로 진행됐던 맑스주의는 논의의 중심을 독점했고, 역사적 인식을 병행하지 못했던 맑스 비판이론들이 힘을 가직 수 없었던 것이다.

두 논문은 ㄸH한 서구의 논쟁을 소개하는 차원에 그친 한국철학의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문화론과 사회학쪽에서 먼저 기술과 정보 사회·여성해방등의 현대적 문제가 철학적으로 해석되고 있었다는 점을 짚고, 국내 문제에 대해 이러한 구체적인 주제에서 현실적으로 철학적 고찰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10년전 6월항쟁속에서 보여진 민중의 실천과 추락하는 문민정부 아래 우리가 해 온 실천이 교차하는 가운데, 앞으로 해야할 실천들이 견고한 토대를 쌓기 위해서는 무비판적인 서구철학의 수용을 극복하고 한국적 철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논의가 맑스주의의 배격이 아니라 새로운 모색이듯이 학술운동과 진보진영내에서 과감히 담론의 그림자를 걷고 실천과 개입되는 철학적 모색이 더욱 필요하다.

아울러 현실의 문제와 동ㄸJㄹ어져 아카데미즘적 논의에 매몰돼 있는 한국 철학계 전반의 반성이 아쉬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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