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물질의 상호관련성

지난 70년대까지 ‘한의학은 과학인가?비과학인가?’하는 논쟁속에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한의학을 비과학 또는 미신이라 보고 한의학이 현대의학발전에 저해요소가 된다고 생각해 한의학을 말살하려는 운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도 한의학을 비과학이니 미신이니 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과학자들 특히 기초의학자들까지도 이제는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한의학의 과학화’를 부르짖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왜, 한의학을 비과학이라 하면서 말살하려던 과학자들이 지금에 와서는 한의학을 과학적이라 하면서 과학화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그동안 한의학의 모습이 달라져서 그러는 것일까? 그동안 한의학의 못브이 달라져서 그러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한의학을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과학은 한의학을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뉴턴의 인과론에 의해 만들어진 환원주의적이고 기계론적인 자로 봐왔다.

즉 근대과학은 실험적 검증이란 독특한 방법론을 통해 인간의 내적·외적 경험의 주관성을 탈색시키고 추상화·객관화시켜 실험을 거쳐 검증되지 않은 이론은 아무리 합리적이더라도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같은 가설-실험-검증-이론의 도식은 물리적 대상을 넘어 인간의 생리적·정신적 영역을 이해하는 객관적이고 유일한 척도로서 근대 사회의 보편적 원리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따라서 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한의학을 비과학적으로 본 것은 바로 이러한 실험 과학이라는 자로 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오면서 물질의 궁극적 단위라고 믿었던 원자의 내부가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확정할 수 없는 신비라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됐으며 또한 새로운 자를 만들게 됐다.

아원자의 신비속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절대적 시간축에서 절대적 공간을 점유하는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전체와의 역동균형속에서 상대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모종의 에너지 장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과학의 전제였던 독립적이고 딱딱한 ‘물질’대신 상대적이고 유연한 ‘에너지’ 그리고 그것들이 펼쳐내는 장 및 장의 흐름이 새로운 과학의 모델로 등장하게 되면서 두번째의 새로운 자가 만들어 지게 됐다.

이와 함께 과학계가 철두철미한 유기체적 발상에 입각한 동양의 전통철학, 그리고 그 철학에 바탕한 한의학을 다시 재게 됐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이 자를 통해 알게 됐고 한의학을 비과학이 아닌 미과학이라 하면서 흥미이상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실 첫번째 자로 한의학을 재어 마름질하면 한의학의 특징인 유기적·생태적 세계관을 잃어버릴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한의학의 과학화를 반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요즈음 약리학자들이 한의학을 과학화한다면서 한약을 분석해 주성분을 추출해 내고 한편, 약리작용을 설명하면서 한의학을 마치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 마냥 대서 특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한의학에서 약물에 대한 인식은 분석적 방법이 아닌 기미론적 방법이다.

약물이나 음식물을 차가운 성질을 가진 것, 서늘한 성질을 가진 것, 뜨거운 성질을 가진 것으로 분류한다.

이를 한·량 및 열·온의 약물이라 하며, 전자를 음성 후자를 야성이라고 한다.

현대의 서양식 영양학적으로 보면 찹쌀과 맵쌀은 크게 다를 바 없는데도 실제로 음식물의 기와 성질에 따라 건강에 상반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음식물이나 약물은 기 또는 성질의 개념을 배제한 채 단순히 식품 분석적 견해나 칼로리 계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적 요소를 기라고 보며 또한 생명현상을 기의 작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한의학의 기본 원리는 기로 설명되고, 기가 운행하는 길을 경락이라 해 인체의 생리를 설명한다.

그런데 현대적 과학방법으로 이 기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의학은 과학화화해서는 안되는 것인가?그렇지않다.

한의학이 아무리 풍부한 임상적 경험을 통해 좋은 기술을 체득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경험이 과학적으로 재인식돼 개발되지 않으면 한의학은 한낱 전통의학의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의학이 전통의학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보편성을 지니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과학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과학이 기술에 줄 수 있는 중요한 강범은 그것이 바로 시행착오의 과정을 줄일 수 있다는 데 있따. 경험이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만일 여기에 너무 깊이 의존한다면 결과적으로 신비주의나 불가지론으로 귀착되고 만다.

이러한 시실에 대한 깊은 반성없이 한의학의 가치를 곧바로 ‘기’의 존재 입증이나 음양오행론의 과학성으로만 은근히 끌어들여 합리화시킨다면 거기에는 문제가 뒤따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의학의 과학적 연구는 절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과학은 근대과학이 아닌 신과학이나 또는 새로운 첨단과학이 되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 안될 것은 과학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과학자들은 한의학에서 그들이 소홀이했던 정신 세계를 찾고, 한의학자들은 서양과학에서 그들이 등한시해떤 물질세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신과 물질은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관성 관계에 있으며 상호의존하는 통일적 전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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