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상」 창간호를 살펴본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현대사상」은 특이한 점이 있는 계간지이다.

우선 근자에 새로 발간된 계간지 대부분이 문예지인데 반해 「현대사상」은 제목 그대로 사상이라고 하는 포괄적 범위를 설정한 인문사회과학지다.

기간에 인문사회과학지가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역사비평」,「경제와 사회」,「동향과 전망」등 이름만 들어도 다루는 영역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는 성격이었던 데 비해서 「현대사상」은 창간사에서 학제통합적 목표의식을 ㄸN렷이 하고 있다.

이전까지 이런 성격의 논의는 대개 「창작과 비평」,「문학과 사회」등 유수 문학계간지의 일부지면에 할애돼 실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지였던데 비해「현대사상」은 어떤 분과에 자신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90년대 들어 문화산업이 이전의 지적논의들을 대체 혹은 압도해 버린 상황에서 인문사회과학이 총체적‘불황’을 겪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현대사상」의 출사표는 용기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지적 활력이 소진된 시기에 이러한 시도는 일단 필요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현대사상」이 표방하고 있는 지식인 상이다.

창간사‘지식행위의 복권을 위하여’와 이남호의 에세이, 그리고 도정일·정수복·정과리·김상환 등이 참가한 특집 좌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기조는 곤적 담론 영역을 형성하고 리드하는 계몽주의적 전형의 지식인 상이다.

고고한 선비의 자세와 민중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지도하고 깨우치는 실학자상의 결합이 건강한 지식인 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태에서 이거은 아무문제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지식인의 존재방식에대해 이론적으로 역사적으로 여러 입장이 있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사뭇 다르다.

사라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민중과 지배계급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지식인의 고뇌를 그렸고 만하임은 ‘주변인’이란 개념으로 그러한 현실로부터의 거리가 오히려 지식인의 존재근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푸코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식-권력은 본질적으로 한 쌍이고 그런 점에서 지식인이 다른 주체를 대변(represent)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으로 설정된다.

문제를 조금 다르게 맑시즘적 시각으로 보자면 계급 이해에서 벗어난 ‘공적담론 영역’의 설정 자체가 환상일 수도 있다.

필자가 여기서「현대사상」이 표방하고 있는 지식인 상에 대해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이미 하나의 ‘입장’이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그러한 지식인 상은 곧「현대사상」의 당대에 대한 과제인식과도 연결돼 있을 것이며 그 성과를 지켜보는 것이 독자들의 몫일 터이다.

「현대사상」의 구성은 창간사, 권두 에세이, 특집좌담‘무엇을 할 것인가’, 기획‘오늘의 지성을 찾아서(김영민 편)’, 현대사상의 창’(김성기), 기획특집 ‘맥루한 르네상스’등으로 이뤄져 있다.

창간사는 앞서 밝힌 바 「현대사상」의 기본적 문제의식, 즉 학제 통합적인 포괄적 지성의 복권을 선언하고 있다.

이남호의 권두에세이는 오늘날의 학문풍토가‘지식아파트’(분과체계에 갖힌 협소한 전문성에 대한 비판이 그 내용이다),‘마피아 경영학’(처세술이 지식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 그 내용이다),‘음모의 사회학’(현상에 대해 투명하게 접근하지 않고 전략적 입장에서 접근함을 비판하고 있다), ‘문화론의 자기소외’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하고 이성적 주장과 절차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식인의 소명을 역설하고 있다.

특집좌담의 화두는‘문명사적 전환기와 한국 지식인의 과제’다.

이 좌담에서는 오늘날 지식계의 위축원인에 대한 진단, 지식인의 현실, 지식계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새로운 과제 혹은 주체들, 그리고 좌담에 참석한 이들의 작업방향에 대한 소개 등으로 이뤄져 있다.

눈여겨 볼 것은 하나의 시대규정으로서 정보화 사회에 대한 참석자들의 공감과 그것의 변화 추이에 따른 지식인의 과제에 많은 논의가 할애돼있다는 점이다.

참석자들 면면이 그 영역에서 대표적 지식인들 중 한명이므로 우리 지식계의 ‘풍향’에 대한 알림으로는 유익한 장이다.

기획특집은 그 묘비에조차‘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적혀있는 현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대가 맥루한을 다각도에서 다루고 있다.

맥루한은 매체변화가 사회변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도 현대 미디어 매체들의 기본적 성격 규정을 시도했던 캐나다 태생의 문명비평가이다.

워낙에는 영문학도로 출발한 문학비평가로 활약했지만 그의 후기에 미디어 연구로 선화한 이다.

그 후반부의 작업성과가 오늘날 매체 환경의 변화가 주요한 사회적 변화의 동인이 되고 있다는 인식아래 대거 재조명되고 있다.

이 특집은 세 부분으로 구성 돼 맥루한에 대한 이해, 그의 이론의 현대적 위상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가 포착했던 문화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조명으로 구성돼 있다.

기획특집에 맥루한이 다뤄진 것은 좌담에서 본 바와 같이 「현대사상」이 정보화사회에 대한 대응 문제에 보이고 있는 관심의 비중에서 비롯됐다고 보여진다.

「현대사상」우리 지식계의 주요한 한 축을 맡고 있는 이들의 현실인식과 그에 대응하고자 하는 연구 성과를 식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계간지다.

이제 창간된 계간지를 평가한다는 것인 누구에게도 섣부른 일이고, 여기서는 다만 어려운 지식계의 상황을 활성화 시키고자 하는 대의에 박수를 보내며 그에 걸맞는 성과로 지식계와 대중 모두에게 의미있는 계간지로 성장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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