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과학에 대한 한가지 이해의 방식으로서의 ‘거대과학’이란 20세기 중반에 들어오면서 과학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를 묘사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 활동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은 외부와는 고립된 자그마한 실험실에서 한 과학자가 조수 한 두명의 조력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학활동에 대한 이해는 대개 중·고등학교의 과학시간에 배운 뉴튼 등의 17∼18세기 과학자의 과학활동에 가깝다.

이에 반해 거대과학은 확실히 현대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거대과학은 반경이 수 Km에 달하는 입자가속기와 같은 거대한 실험장치를 중심으로, 수천 명의 과학기술자들의 한 곳에 동원되며, 국가(연방정부)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물적·인적·금전적 자본을 원활이 운영하기 위해서 수직적이고 위계적으로 조직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 정도면 과학활동이 대규모 공정화 됐다고 묘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거대과학의 예를 살펴보면, 2차대전 중에서 원자폭탄을 만들어낸‘맨하탄 프로젝트’와 그 승계자인 원자력 발전 연구, 미국과 유럽에서 경쟁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거대한 입자가속기, 인류를 최초로 달에 상륙시킨 ‘아폴로 프로젝트’그리고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그 시대에 한참‘잘 나간다’는 과학 분야는 거의 대부분 거대과학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변화된 과학활동의 모습을 묘사하는 거대과학은 단순히 분석적인 의미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초기에 사용될 때부터 비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과거 과학의 ‘순수함’을 잃게 된다는 식의 퇴행적인 비판도 포함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보다 강조돼야 할 것은 과학이 거대화 돼 엘리트 과학자·군부·대기업·관료들의 파워 네트워크에 의해 통제되면서 대중들의 과학에 대한 통제권력이 갈수록 약해진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거대한 자원을 소모하는 거대과학 활동이 과연 다른 연구보다 더 사회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도 지적된다.

예를 들어 인류의 과학적 성취(사실은 미국의 성취)를 과시하기 위해서 엄청난 재원이 소요된 아폴로 계획이 당시에 사회적으로 필요했던 과학연구보다 더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또한 수조 달러가 투입되는 가속기 건설이 기아에 의해 죽어가는 전세계 난민들의 구호보다 더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에 포항에 ‘자랑스러운’입자가속기가 건설돼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것의 건설과 운영을 두고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거대과학’이 시작됐다고 평가하는 논자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드디어 우리도 거대한 소외와 낭비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