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론을 알아본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지배력이 점점 커가고 있는 분명한 사실을 목도하면서도 정작 사회가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능력은 오히려 점점 뒤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과학기술이 물질생활의 풍요함을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지구환경 위기와 최근 복제양 사건에서 보듯 인류와 자연을 절멸로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위험사회’또한 과학기술이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뚜렷한 대처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해 이렇게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는 오늘, 우리나라의 정부와 기업은 아직 우리의 경우 갈 길이 멀다고 하면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에 전력을 다해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과학기술에 대한 학문적인 이해는 최근 20~30년간 크게 바뀌어 왔다.

2차대전 후 60년대초까지는 서구가 장기호황을 누리면서 과학과 사회진보에 대해 낙관론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이때 과학에 관한 지배적인 생각은 뉴턴 물리학의 성공 이후 오랜 기간데 걸쳐 서구에서 형성돼 온 계몽적 합리주의로서 이는 과학지식이 어느 특정한 사회적 맥락을 초월하는 보편합리적인 원칙들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사회로부터 자율적인 것이라 보는 관점이다.

이러한 과학관이 20세기의 과학학에 구체적으로 구현된 것이 과학철학에서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로, 과학사에서 내부사 (internalist)학파로 각기 나타났다면, 사회학 분야에서는 머튼(R.K. Merton)의 기능주의적 과학사회학 (functionalist sociology of science)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가치중립적인 과학의 응용으로서의 기술이 결국 사회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기술결정론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6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과학에 대한 낙관론은 서구사회에서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산업화과정에서 누적된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 그리고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저항운동과 거기서 사용된 대량 살상무기에 대한 반대 등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과학기술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대중과 지식인, 학생 사이에 팽배해 갔다.

이들에게 과학기술은 합리적인 것이기는 커녕 억압적인 국가권력과 자본의 손에 쥐어진 지배수단으로 인식됐도, 현대 과학기술의 근본적 가치를 문제삼는 ‘반과학 기술운동’이 확산됐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분석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학계로부터도 생겨났다.

바로 이러한 배경하에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걸쳐 대학의 새로운 교과과저으로서 다양한 ‘과학기술과 사회(STS)프로그램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속속 생겨났던 것이다.

이같은 대학의 제도적 변화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론들오 나타나게 됐다.

쿤(T.Kuhn)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와 그것이 촉진한 과학철학의 상대주의 논쟁은 기존의 과학관과는 달리 과학지식의 결정도 사회적 요인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을 출범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과학논쟁 분석과 실험실의 참여관할 연구 등을 통해서 과학지식이 어떻게 과학자들간의 사회적 협상을 통해 구성되고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생생히 그려냈다.

더 나아가 80년대부터는 이러한 접근이 기술을 설명하는데 응용되면서 기존의 지배적 관점이었던 기술결정론을 효과적으로 비판하는 새로운 기술사회학 이론들을 출현시켰다.

기술이 구성되는 과정 역시 가치판단이 기ㅌ게 개입되는 일종의 사회적 과정이며 따라서 기술에 수반되는 사회적 결과도 이러한 과정을 이해함으로써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사회적 구성론’(social constructivism)이라고 총괄하여 불리우는 이 새로운 과학기술론의 특징은 한마디로 과학기술의 ‘암흑상자’열기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속에서 어떻게 행위자들에 의해 하나하나 지식 혹은 인공물로 구성되는지를 밝힘으로써 근대 과학기술의 탈신비화가 가능해진다고 이들은 본다.

이렇게 보면 과학기술은 초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부장제·민족국가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근대사회의 맥락 속에서 구성된 것이며 따라서 과학기술이 오늘날 위험사회를 초래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구성이 수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현재의 과학기술이 유일한 발전경로가 아니며 대안적 과학기술의 사회적 구성이 가능하다는 시사를 얻을 수도 있다.

이는 미래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중대한 선택이 열려 있음을 의미하낟. 즉 문제는 단지 ‘과학기술을 어떻게 더 빨리 발전시킬 것인가’혹은 그것을‘선용하느냐 악용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하한, 무엇을 위한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냐?’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과학기술의 사회적 구성에서 소외돼 있는 시민사회가 과학기술이 인간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경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민주적 통제권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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