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켈리니코스 강연.‘마르크스주의와 한국의 노동운동’

「마르크스의 혁멱정 사상」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알렉스 캘리니코스 교수(영국 요크대 정치학)의 강연회가‘마르크스주의와 한국의 노동운동’이란 주제로 25일(화) 고려대 4.18 기념관에서 열렸다.

고려대 총학생회·고려대 대학원총학생회 주최로 마련된 이번 강연회에서 갤리니코스교수는 현대사회의 맑스주의에 대한 재해석, 고전 맑스주의와 남한 노동자의 연결지점, 부분운동과 노동운동의 한계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현재에 있어 맑스주의가 영국 등 서방 세계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와 동구권 등 소위 사회주의 정권이 보여준 스탈린주의에 의해 왜곡됐다며 이들과의 구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스탈린주의는 사기업이 아닌 국가를 통해 지배층이 형성되는‘국가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오히려 스탈린주의가 사회주의와 동일시 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동구권 몰락과 소련의 해체를 맑스주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맑스주의에 대한 재정의에 이어 캘리니코스는 현 사회의 거대담론으로 자리잡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를 반박하며 맑시즘의 유의미성을 밝혔다.

맑스주의같이 인간유형을 단일하게 엮으려는 의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며 현실에 초연한 자세를 보일것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빈곤·억압의 문제에도 같은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논리로 흘러 대안 없는 비판만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맑스주의는 사회변화에 따른 유물론적 역사이론이라는 점, 임금 노동자의 착취가 불가피한 자본주의 경쟁체제에 대한 이론이라는 것과 함께 ‘자기 해방’이라는 실천적 측면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그에게 있어 절대적 가치는‘노동자의 자기해방’이란 부분으로 스탈린주의나 사민주의가 위로부터의 사회주의를 통해, 결국 또 다른 우월한 체계를 만드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캘리니코스는 이러한 고전 맑스주의의 타당성을 근간으로 남한 노동자의 연결지점을 모색했다.

군사독재정권하에서 권위주의를 토대로 급속한 자본주의화가 이뤄진 남한은 국가자본주의의 명백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갑작스런 공업화는 사적자본가(재벌)에게 자본이 몰리면서 이들의 자본의 재생산구조를 고착화시키며 이에 따른 계급적 착취는 역사적으로 전투적 노동운동을 가져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온 80년대 브라질 노동자 파업, 80년대 중반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파업 후의 결과들을 살펴 볼 때 신흥공업국가의 전투적 노동운도잉 사회주의로 곧바로 나아가지 못한 점에서 그의 비판 지점이 나타난다.

즉 노동운동의 활성화라는 전제하에 나타난 노조관료는 노동자와 자본가 중간에 위치해 새로운 계층을 형성, 사회민주주의의 정당의 중심축이 되고 후에 개량주의 빠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캘리니코스는 서구 유럽과 남아공 공산당의 예를 통해 ‘자본주의 하에서의 인간적 사회우의’를 주장하는 사민주의적 개혁은 노동계급에게 어떠한 해결책도 주지 못한 채 세계자본주의 체제한에 흡수 될 수 밖에 없다며 남한의 노동운동 개량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개량화를 지양해가는 과정이 우선돼야 하며 이를 위해 학생·노동자간의 연대, 맑스주의와 노동자 투쟁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이 이어져 나가는 해결점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는 몇년 전부터 논의돼온 성·환경 등 부분운동과 노동운동의 관계를 고찰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억압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부분운동이 활발히 진행돼고 있으나 이러한 운동들은 으히려 근본 투쟁 지점인 노동운동 전선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60년대 반전운동과 함께 급속히 성장한 여성·흑인 운동은 혁명적 성격이었으나 80년대 목적이 변화하면서 흑인운동지도자가 민주당에 소속되고 여성운동 역시 부르주아운동으로 전락하면서(사무직 여성의 불평등한 승진구조개성 등) 반자본적 성격을 잃게 된다.

또한 환경(생태계)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운동들은 필연적으로 반자본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나 이러한 부분운동은 노동운동과 결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같이 병행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사회주의의 실편을 통해 자본주의의 억압적 요소를 한순간에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그 근본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믿는 캘리니코스. 현재에도 남한 사회에서 맑스주의가 끊임없이 재해석 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회주의가 단순히 경제적 착취에 대한 해방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불평등, 부정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 해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캘리니코스 강연은 이러한 점에서 되새겨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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