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출처=알라딘
출처=알라딘

“혼돈이 지배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혼돈은 곧 나아간다는 것이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사회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가 많았다. 버젓이 존재하는 이들을 묵인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관념의 위계질서가 곧 정답이라는 말들이 버거웠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나누고, 그 사이에서 정상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

완벽한 질서라는 환상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 책에서도 나오는 예시로, 나치는 게르만족이 우월한 혈통이며 그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이민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우생학은 ‘적합’하지 않은 유전자를 잇지 못하게 막았다. 다윈의 진화론이 말하고 있는 것을 왜곡해 위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종에서 어떤 형질이 남아 진화했다는 것은 특정한 환경에 잘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 이상으로 형질의 우열을 말해주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형질의 유전자를 갖고 있을 때, 그 유전자에 치명적인 위협을 주는 요인이 발생한다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현대 사회는 어떠한가. 그리고 어떠해야 하는가. 그 답 또한 이 책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 존재한다. 그만큼 크고 작은 혼란이 발생한다. 이를 감추려 하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며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이들이 있다.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해 경계를 그으며 편을 나누고, 가장 먼저 떨어뜨릴 이를 정한다. 일단 규정하고 나면 의심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그것이 사회를 안정시키는 합리적 판단이라고 믿는다. 책에서는 복잡성이 만들어내는 혼돈을 외면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다.

이 책은 작가 룰루 밀러가 자기 삶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를 녹여낸 액자식 구조로 진행된다. 조던은 어류를 분류하고 이름 짓던 생물학자였다. 그가 발견해낸 물고기들을 그 특징과 관계에 따라 구분했다. 지진이라는 재해 속에서도 그가 목숨줄처럼 붙잡았던 것은 그가 박제한 물고기들의 이름이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것은 ‘어류’의 질서였다. 자연 앞에 인간은 사소하다는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자신이 만든 체계가 옳다고 믿고 추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론만 말하자면, 그가 평생을 바쳐온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인간의 눈으로 복잡한 자연을 뭉뚱그린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은 정상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에 위계를 만들고 스스로 꼭대기에 섰다.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W.B. 예이츠) ‘어류’라는 범주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변한 것은 그 범주를 재단하던 직관과 언어가 힘을 상실했다는 것뿐이다. 여전히 그 생명체들은 존재하고 있으며 자연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계, 그것이 진정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라면 이미 그러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의 사람들뿐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간들이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를 은폐하고 이룬 안정은 결국 무너지게 마련이다.

룰루 밀러는 개인적 경험을 계기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집착에 가깝게 추적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며 그가 발견한 ‘혼돈’이라는 섭리를 전달한다. 질서와 범주에서 배제된 이들은 어떻게, 왜 규정되고 재단되어왔는지, 그런데도 그들이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을 여과 없이 풀어낸다.

추천하는 글을 쓰면서도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내 글이 일종의 틀이 될까 봐 우려스럽다. 직접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물고기’의 질서를 포기하며 얻는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게는 새로운 지식의 확장, 더 나아가 우리가 직관으로 나눈 다른 범주도 무너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다가왔다. 혼돈이 지배한다는 명제는 어느 것도 확언할 수 없던, 괴로이 고민했던 과거를 위로해주는 듯했다. 그대가 ‘물고기’를 포기한다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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