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이후 2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었다. 언론에서는 ‘일상으로의 회귀’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쏟아내고 있지만, 문득 우리의 일상이 과연 2020년 이전의 그것과 동일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코로나 이후의 일상은 그 이전의 일상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날의 꽃잎이 흩날리는 대학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흔적을 까맣게 잊게 만든다. ‘청춘’이라는 단어는 어느 시기에나, 어떤 상황에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런데 과연 당사자인 청년들은 본인에게서 발산되는 충만한 에너지의 가치를 알고 있을까? 때론 한 걸음 뒤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만 대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이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언제나 뭔가에 쫓기듯이 바빴고, 때때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삶이 무료하기도 했다. 학기 중에는 강좌별로 주어진 수많은 과제와 시험들을 일정에 맞게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업 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스펙을 쌓기 위해 분주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무의미한 노력이 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불안해했던 것 같다.

그때로부터 20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더욱 과열된 경쟁 구도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만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대학이 더 이상 학문 탐색의 공간이 아닌, 취업을 위한 통로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이제 진부할 뿐이며, 열정을 빌미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회적 구조는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모두가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는 때때로 폭력처럼 느껴진다. 냉정하게 말해서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따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각자가 닿을 수 있는 목표는 동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그 기회를 성취할 수 있는 인원은 언제나 제한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모두’ 동등하게 성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청년들이 자기를 채찍질하고 결과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인간관계를 맺을 때 소비되는 물리적, 심리적 에너지를 자신에게 쏟아붓고 성공을 위해 몰두하는 청년들의 지독한 자기착취의 과정은 때때로 자기만 아는 젊은 세대의 이기적인 태도로 왜곡되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고단하기만 하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할 수 있다’는 끊임없는 응원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청년들을 번아웃(burnout)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고민이 필요하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극도의 무기력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 그에 따른 보상이 부재한 까닭이 아닐까? 그리고 그 결과의 책임을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가능했는데,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놓친 것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질책과 원망이 청년들을 번아웃으로 이끄는 것은 아닐까? 물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가져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어떤 장애물도 없는 것처럼 포장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과장된 응원만을 외쳐서는 곤란하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는 도전을 향한 힘을, 성취에 대한 동기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추진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메시지 속에 숨어있는 목표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누구나’ 꿈꾸는 미래를 ‘누구나’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내려놓고,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가가서 얻어낼 수 있는 현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나’만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늘 실패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실패하더라도 자기를 학대하거나 책망할 필요는 없다.

‘인생 시계 계산법’이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80년으로 계산한다면 24시간은 1440분, 1년은 18분이란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화인’들의 시간은 어떻게 될까? 20세가 오전 6시, 30세는 오전 9시로 계산된다는 점에서, 아마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오전 6시에서 8시 사이를 오가지 않을까 한다. 그대들의 시간은 아직 1교시도 시작하지 않았다. 무엇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절대 늦지 않은 시간에 서 있다는 사실, 그러니 ‘누구나’ 꿈꾸는 목표가 아닌 자신만의 목표를 찾고, 실패해도 괜찮으니 스스로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위로를 건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진부하지만 “괜찮아, 청춘이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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