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과학

과학적 지식과 이론은 자연적인 ‘실체’를 기술하고 설명하려는 노력으로 간주된다.

이때 ‘자연적 사실’이라는 것이 ‘실체’가 되는 것은 우리의 의식속에서 인식되고 해석되어질 때 가능한 것인데 70년대 이후 사회과학자들, 특히 페미니스트들은 사실에 대한 인식과 해석과정을 문제시하면서 과학을 하나의 언설로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과학 패러다임의 의 보편성 신화가 토마스 쿤에 의해 깨어진 이후 ‘과학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이지도 공평하지도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에 의해 계속됐다.

이들은 과학이나 과학자들 역시 사회·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문제제기 방식과 그것에 대한 해답의 추구방식은 그것들이 생산되는 사회문화적인 영향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갖는다.

이들은 특히 과학적 지식언어의 형성과 의미 구성에 주목하면서 과학지식을 구성하는 언어와 그것들의 의미를 분석했는데, 과학자들이 지식전달을 위해 사용하는 의미재현이나 이미지는 이미 알려져 있는 것을 이용해 다른 것, 혹은 새로운 것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은유로서 설명돼야 한다고 보았다.

이때 은유는 선행하는 담론에 의해 이미 그 의미가 주어짐으로써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은유를 써서 설명하는 과학언어는 그 언어가 획득한 기존의 의미를 재생산 하는 정치적 성격을 갖게 된다.

인류학자인 메리 더글라스는 ‘인간의 몸은 항상 사회의 이미지로서 취급되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을 포함하지 않은채 인간의 몸에 대해 자연스럽게 사고하는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인간의 몸에 대한 생물학은 항상 세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성으리 출산과 관련된 재상상 생물학 지식의 발달사는 여성과 남성에 관한 서구문화의 가정들의 어떻게 여성의 재생산 생물학의 과학언어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일세기 동안 미국의 산부인과 교과서들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를 연구한 에밀리 마틴은 0114인간의 몸을 설명하는 서구의 의학언어는 서구사회와 문화를 설명하는 주요 개념들의 은유로 점철 돼 왔다’고 보고했다.

즉 사회를 설명하는 주 패러다임들이 의학적 지식을 구성하는 주요 메타포로 사용돼왔다는 것이다.

19시기 이전 서구의학에서는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을 구분하는 열의 과다로 남녀의 몸을 설명했었고, 19세기에는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변화성이 있는 남성’과 ‘보다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여성0115을 수입과 지출이라는 경제적 개념을 통해 정상성/건강 개념으로 설명했었다.

또한 2차 대전이후에 가장 지배적인 유기체인 메타포인 ‘공장 이미지’는 공장의 구조와 몸의 구조를 하나의 당연한 질서로 병치시켜왔다.

몸 세포의 생화학적 체계는 분화된 기능을 보유한 ‘기계의 메타포’로 언설화돼왔고 이러한 유기적 이미지는 20세기 후반에 분절된 자본의 다국적화와 함께 우주과학, 정보과학이 등장하면서 더욱 정교화된다.

최근 분자생물학에서 사용하는 몸의 기계적 이미지는 정보과학, 전먼직 관리체계 그리고 중앙집권통제에 기반한 메타포를 사용하면서 놀랄만큼 주변과학의 언어 체계와 맞물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남녀를 설명하는 여러 메타포들은 상호 논리적 연관성 때문이 아니라 그 메타포가 지시하는 기존의 사회문화적 의미때문에 차용돼왔다.

이런 설명틀 속에서 여성의 몸은 호르몬에 의해 반응되는 하나의 신호체계로 이미지화된다.

여성들의 월경0104폐경·임신과 출산 그리고 성욕에 관한 생물학적 지식들은 여성의 몸을 호르몬에 의해 반응하는, 위계적으로 조직화된 의사소통체계로 간주한다.

그래서 여성의 몸은 생식 재생산을 위한 하나의 정보 명령체계로 조직화되는데, 임신을 위한 피드백 체계로 움직이는 이 호르몬의 정보체계에서 수태가 되지 않은 월경상태나 더 이상 재상산을 할 수 없는 폐경은‘기능이 폐기된 무용물·도산한 기업·태만한 기계’와 같은 이미지로 의학교과서에 기술돼왔다.

수태된 난자의 착상을 중심으로 하여 여성의 월경주기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산부인과 의학사의 기술 방식에 대해 마틴은 과학/의학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

마틴은 여성의 입장에서 볼대 월경주기는 수태가 아니라 월경 자체를 생산하는 주기로 설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타포를 사용하여 의학지식을 설명하는 방식은 생리적 살실에 하나의 해석을 적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어떤 메타포를 사용하는가하는 것은 지배문화의 논리로부터 선택되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사회적 헤게모니와 관련된 하나의 ‘자연성’으로 인식되는 구조를 갖는다.

이점에서 과학은 현대사회에서 현실을 규정하는 하나의 문화체계이고 동시에 강력하게 그 담론에 포섭되기를 강요하는 사회통제체계이기 때문에 과학담론이 여성들을 어떻게 구성해내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여성현실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언어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분석영역이며 투쟁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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