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를 보고 있으면 계속 흐르는 중인지
계속 치솟는 중인지 모를 때가 있다.
함께 흐르는 듯 함께 치솟는 듯 해 폭포에게
무엇을 봤냐고 물어본다.
귀가 어두워서 모른다고
못 들었다고
못 봤다고 하고
바닥에서 다시 튀어 오르는 물은 마치 무명천이
펄럭이는 것 같다.
흘러간 물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폭포. 이미
흘러간 물줄기는 천 리를 지나고 만 리를 지나고
지금쯤 어느 별에 닿았을 것인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낮마다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폭포는
그 옛날의 물줄기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네.

제10회 제주4·3 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유수진 작가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제10회 제주4·3 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유수진 작가 김영원 사진기자

유수진 작가(독문·94년졸)의 시 ‘폭포’가 ‘제10회 제주 4·3 평화문학상’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유 작가는 해당 작품을 통해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듯 과거의 진실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날이 온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제주 4·3 평화문학상은 제주 4·3 평화재단이 주관하는 문학상으로, 4·3 사건을 기억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취지를 담아 매년 개최된다. 제10회 문학상은 ‘4·3의 진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진행됐다.

이번 제주 4.3 문학상에는 시 830편, 소설 73편, 논픽션 4편이 출품됐다. 그 중 수상작은 유 작가의 시 ‘폭포’가 유일하다. 심사위원단은 “해당 작품이 폭포라는 소재를 죽음과 대비하면서 역동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수상작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유 작가는 학부 시절에도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는 특히 도서관을 좋아했다. 한국 소설 전작을 읽겠다는 포부로 도서관에 다니던 당시 그가 세운 전략은 ‘책을 절대 대출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매일 도서관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다시 서가에 꽂아 두고 오던 봄부터 여름까지의 밤들이 아직도 생각나곤 합니다.”

문학을 좋아하던 학생이었지만 창작 글쓰기를 마냥 좋아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글을 쓰면 자꾸 내 속의 것을 들키게 되는 것 같아 두렵고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폭포’ 역시 쉽게 쓰인 작품은 아니었다. 어릴 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그였기에 관련 소재로 작품을 쓰는 것은 특히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이번 문학상에서 어릴 적 트라우마를 직면하고자 노력했다. 용기는 작품으로 완성됐다.

“굉장히 큰 용기를 가지고 썼는데 상까지 받게 돼서 ‘결국엔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걸 써야 잘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번 상이 앞으로의 작품에 방향성을 정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는 제주에 위치한 여러 폭포를 감상하며 자연스레 영감을 얻었다. 그는 폭포 옆에 다가가자 거센 물줄기로 주변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동안 우리들이 과거의 폭력에 대해 마치 못 들은 것처럼, 못 본 것처럼 지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시끄러운 폭포 옆에 서 있는 것처럼요.” 그는 폭포에서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주 4·3 사건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결국 먼 곳을 돌아 언젠가는 다시 낙하의 지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자연의 진리에 주목해 시를 써 내려 갔다. “말 못하고 지나갔다고 해서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대면하려고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유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책을 거꾸로 읽는 그의 습관과 접점을 이룬다. 그는 책을 읽어나갈 때 맨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고 한 페이지씩 거꾸로 읽어가곤 했다. 그는 “끝이라고 결정된 곳부터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하다 보면 ‘다시 맨 앞으로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저는 다 함께 4·3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 것이 어렵다면 맨 뒤 페이지에서 시작해도 됩니다. 거꾸로 읽다가 맨 처음으로 가도 됩니다. 다 함께 읽으면 시작은 끝이 되고 끝은 또 시작이 될 것입니다.”

유 작가에게 이번 상의 무게는 특히 남다르게 와닿았다. 그는 “글의 영향력을 마음 깊이 새기며 책임감을 갖고 글을 쓸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또 그는 앞으로도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아름답게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아픈 이야기를 아름답게 들려줌으로써 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4·3의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진심을 다해 위로의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문학, 시, 소설을 통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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