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연(정외·07년졸)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문경연(정외·07년졸)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본교에서 정치외교학과 동아시아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한국과 대만의 이주배경 청소년을 비교 연구하며 대학과 초·중·고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공저로 『민간중국: 21세기 중국인의 조각보』, 『문턱의 청년들: 한국과 중국, 마주침의 현장』을 썼다.

“선생님, 다문화 교육 시간은 그냥 자는 시간이에요. 너무 힘들게 가르치지 않으셔도 되어요.”

코로나19가 잠깐 주춤하던 어느 날의 고등학교 교실이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인류학자로서 나는 대학에서 ‘문화’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2009년부터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다문화’ 교육을 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국가 단위의 문화를 상정하는 ‘다문화’보다 문화들의 공존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 창조의 의미가 담긴 ‘문화다양성’ 개념이 인류학자로서는 더 선호하는 개념이다. 이렇게 15년째 문화다양성 교육을 하면서 꽤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유치원부터 ‘다문화’ 교육을 받아왔다던 이 고등학생의 말이 뇌리에 계속 맴돌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문화 교육에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런데 왜 이 시간은 자는 시간이 돼버렸을까?

대학 강의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일자리를 뺏는 것 아닌가요?” 나의 세대, 그 앞 세대보다 인권‧다문화 등의 교육을 훨씬 많이 받아 온 청년들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또 다른 의미에서 반성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의 다문화 교육이 ‘존중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강조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기본적인 ‘국가’ 중심의 문화를 전달했던 건 아닌지 말이다. 또 주로 1세계 국가에서 한국에 ‘놀러 온’ 백인이나, 힘들게 살아가는 ‘결혼이주자’만을 강조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그 뒤로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지역사회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내가 공부해오고 있는 대만의 사례가 도움이 많이 됐다. 대만은 한국보다 10여 년 빠르게 결혼 이주와 노동 이주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대만이 이민 사회이기 때문에 한국보다 더 개방적인 사고를 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대만이나 한국 모두 ‘낯섦’을 경계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대만에서 결혼이주자에게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조금 달랐다. 바로 지역사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글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글을 알게 돼 좋고, 살아온 경험을 결혼이주자들에게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이주자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처음 대만과 그 이웃인 푸젠성(福建省), 그리고 인류학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이화와 관련이 깊다. 대학 2학년 때 들었던 사회학과 수업 ‘지역사회연구’에서 인류학자 마저리 울프(Margery Wolf)가 쓴 ‘현대중국의 여성’을 읽으면서부터였다. 당시 정치외교학과 동아시아학을 전공하며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던 나는 ‘중국 여성’을 알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키우고 있었다. 마저리 울프의 책은 학보 기사를 쓰는 것처럼 직접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며 중국 여성을 공부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주었다.

중국 여성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2005년 이화 교정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에서 중국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접하고 더 강해졌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의 페미니즘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아시아 특히 중국 대륙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세계여성학대회에 온 중국 여성 지식인들은 자국에 학교를 세워 중국의 가부장제와 도시화에 고통받는 농촌 여성들에게 지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먼저 배운’ 행운을 다른 여성들과 나누고자 한다는 그들의 말이 인상 깊었다.

이화에서의 경험 덕에 나는 인류학을 만났고, 한국에서 결혼해 사는 중국 여성들을 만나게 됐다. 그러면서 낯선 환경에서 새롭게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인지, ‘빨리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끊임없는 시선 속에서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없애고 ‘한국’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투쟁의 삶인지를 간접적으로 깨달았다. 또 이들이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소비하는 돈과 시간이 더 많음을, 이들에게 갖는 편견은 오히려 이들의 이주 배경을 더 부각하는 잘못된 정책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제 한국에서도 일상에서 이주민들을 종종 만날 테고 앞으로 더 자주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공허한 울림이나 ‘다문화’라는 틀 속에 이주민을 가두기보다는, 이들의 문화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직접 만나고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이주배경 아이들이 늘고 있는 초등학교부터 이 프로그램은 시작되고 있다. ‘다문화’ 학생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이주배경 아이 1명과 다른 아이 1명과의 1대1 만남을 장려하는 식이다.

대학에서는 이미 활용할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이 있다. 예컨대 이화의 유학생 적응을 돕는 버디 학생들이 유학생의 한국 생활이나 교육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이화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 즉 한국과 유학생 고향에서의 ‘젠더’ 관점을 함께 공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주와 젠더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경험이자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문화다양성 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다.

문경연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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