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위한 독자적 법률 필요해 vs 타 의료보건인을 배제하는 처사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간호법 제정안’(간호법)을 검토했지만 의료 단체 간 이견 조율의 실패로 심사가 보류됐다. 2021년 3월 처음 언급된 간호법은 의료계에서 줄곧 논의됐으나 이번에도 결국 심사 확정에 실패했다.

이에 대한간호협회(간협)는 매주 수요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며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외쳤다. 전국의 간호사와 간호대학생들은 뜻을 모으기 위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반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한의사협회(의협)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간호사만을 위한 간호사 법! 대한의사협회가 총력을 다해 저지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이외에도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대한응급구조사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 여러 협회가 간호법 제정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 중 일부는 간협의 집회에 맞서 국회 앞에서 일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16일 오전1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간호법 제정을 연호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해당 집회는 국회1문과 국회2문 사이 기자회견장과 국회의사당역 2번, 5번 출구 앞 총 세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16일 오전1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간호법 제정을 연호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해당 집회는 국회1문과 국회2문 사이 기자회견장과 국회의사당역 2번, 5번 출구 앞 총 세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김영원 사진기자

과거에 멈춰있는 낡은 의료법…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 또는 간호·조산에 관한 사항을 독자적인 법률로 제정함으로써 간호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법률이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은 간호사에게 전문화되고 다양한 역할을 요구하지만, 정작 현 의료법은 시류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교 간호대학 비대위원장 황아현씨는 “(현 의료법은) 사실상 의료기관 개원권을 가진 의사를 중심으로 한 법안”이라며 “이 의료법만으로는 간호사들이 보호받을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간호법의 세부 조항은 ▲간호사의 업무범위 명확화 ▲간호종합계획 5년 주기 수립 및 실태조사 3년 주기 시행 ▲ 충분한 간호사 확보 및 배치 ▲간호사의 근로조건, 임금 등 처우 개선에 관한 기본지침 제정과 재원 확보 방안 마련 ▲간호사의 인권 보호를 위한 조사 및 교육 의무 부과 등을 포함한다.

16일 오전1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간호법 제정을 연호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해당 집회는 국회1문과 국회2문 사이 기자회견장과 국회의사당역 2번, 5번 출구 앞 총 세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16일 오전1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간호법 제정을 연호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해당 집회는 국회1문과 국회2문 사이 기자회견장과 국회의사당역 2번, 5번 출구 앞 총 세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김영원 사진기자

대한간호협회가 발간한 ‘2020 간호통계연보’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인구 천 명당 의료기관 근무 간호사 수는 3.8명으로, 평균 8.9명인 OECD 국가의 수치에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외래 진료 횟수 역시 OECD 국가 중 1위, 평균 입원 일수는 평균 대비 2.5배에 달한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임상현장을 빠르게 이탈하고  있으며 인력난은 악화되고 있다. 2021년 기준 국내 간호사 면허를 소지 인구 약 46만 명 중 임상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약 24만 명에 불과하며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은 45.5%에 달한다. 황씨는 “통계 자료가 열악한 업무환경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업무가 점점 세분화되고 간호사 개개인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도 간호법이 필요한 이유로 제시됐다. 현 의료법에서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국한돼있다. ㄱ(간호·22년졸)씨는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숙련된 간호사의 부재를 막기 위해서는 전문성 강화를 위한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간협 백찬기 국장에 따르면, 현행 의료법의 뿌리인 국민의료법이 만들어졌던 1951년에는 의사가 5082명, 간호사는 1700여명에 불과했다. 반면 현재는 의사 13만 명, 간호사는 무려 46만 명에 달한다. 백 국장은 “70년이나 지난 낡은 법이 변화하는 시대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일부 의료진은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진료행위를 하고 보건의료체계를 붕괴시킨다며 간호법의 입법 취지를 곡해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제로 간호법 제정안에서 해당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 현장 바로 옆인 국회2문에는 간호법 제정 결사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피켓을 세우고 서 있었다.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 현장 바로 옆인 국회2문에는 간호법 제정 결사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피켓을 세우고 서 있었다. 김영원 사진기자

간호법이 되레 악영향을 낳는다는 비판도 존재해

한편 간호법이 부당하다는 주장도 치열하게 제기되고 있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간호법이 제정될 시 ▲보건의료체계 혼란 ▲직역 간 갈등 조장 ▲의료비용의 기하급수적 증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간무협은 간호법의 제정 취지에는 공감하나 ‘간호조무사 전문대 양성’과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인정’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제정에 반대한다고 운을 뗐다. 간호조무사도 간호사와 동일한 간호법 당사자임에도 발의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무협은 “간호법 발의와 관련해 많은 반발이 있지만,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함께 상생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최소 요구가 법안에 담기면 동참할 수 있음을 처음부터 꾸준히 밝혔다”며 “그러나 지금 발의된 간호법에는 간무협의 해묵은 문제와 관련된 최소한의 법안이 담겨있지 않아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간호법이 다른 보건의료 직종에 미치는 악영향도 언급됐다. 간무협은 임상병리사, 작업치료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등 여러 의료기사들과 응급구조사도 간호사의 업무 범위 확대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고 밝혔다. 살인적인 업무 강도, 인력난등은 간호사뿐 아니라 보건의료현장에 종사하는 모든 보건의료인이 겪고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간무협은 간호법이 전체 의료인 중 간호사만을 독자적으로 조명해 법 통과 지지를 호소하고 있음을 강력히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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