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라(영문·15년졸·애플 재직)
박세라(영문·15년졸·애플 재직)

주중에는 애플에서 일하고 주말엔 강원 금진해변에서 서핑을 한다. (직무와 업무에 관한 내용은 애플의 사내 규정 상 공개할 수 없어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평균 학점 3.0이 안 되는 문과생이 어쩌다 IT 업계에 7년째 몸을 담고 있다. 이 파도, 저 파도, 내 앞에 닥쳐온 파도를 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경영학 전공도, 공학 전공도 아닌 인문학도다. 입학식은 귀찮아서 자체 생략했고, 대학에서는 가슴 뛰는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낭만을 고수하며 관심 있는 수업만 골라 들었다. 학교생활보다 경제 활동에 더 열심이었고, 친구들이 스터디를 할 때 나는 교내 영자신문 이화보이스를 찍어내느라 을지로의 인쇄소 골목을 뛰어다녔다. 심지어 긴 휴학 생활로 대학교를 초등학교처럼 다녔다.

참으로 정석을 벗어난 대학 생활이었다. 오늘 나는 그러한 삶의 과정을 공유하려 한다. 다양한 이유로 정석을(?) 벗어나 걱정인 벗들에게 내 이야기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컨베이어벨트 밖의 삶은 생각보다 꽤 괜찮다.

나는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의 백이진처럼 ‘IMF 키즈’다. 드라마 속 그처럼, 우리는 시대로부터 금수저를 빼앗겼고 가족이 흩어졌다. 시대가 나의 창창한 앞길이 막는 것이 그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다시 한번 시대가 내 꿈을 가로막았다. 졸업할 즈음, 새 총장님은 학점을 등록하지 않으면 졸업 유예가 불가능하다는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다. 점점 늘어나는 졸업 유예자 수가 대학교 평가 지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던 때였다. 소강당에서 학생처 담당자에게 소란스럽게 항의하던 학우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정도로 무슨 시대와 꿈 운운하느냐 싶겠지만, 적어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가며 학교생활을 이어 온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이제 겨우 해야 할 준비를 모두 마치고 언론고시실에서 스터디원 찾으려 하고 있었는데, 졸업 유예가 아닌 학점 등록이라니. 6년간 경제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는 더 이상 그 생활을 이어갈 자신이 없어 일단 졸업하는 길을 선택했다.

학교 밖에서 불안함과 싸우며 공부하고 지낸 지 다섯 달쯤 되었을 때, 나는 구글 코리아에 입사해 마케팅팀에서 일하게 됐다. 휴학하고 일했던 스타트업의 경험이 운 좋게 경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내가 다녔던 스타트업은 스마트폰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던 때, 앱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연아의 햅틱’을 대부분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라고 믿고 있던 시절이었다. 대학 2학년 학생이 무슨 재주와 경험이 있어서 회사에 보탬이 되겠는가? 그런데 돈도 벌고 일도 배울 수 있다니, 때마침 학비가 모자랐던 나는 망설이지 않고 휴학을 선택했고 그렇게 2, 3년을 보냈던 것이다.

호기심 충족과 등록금과 밥벌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커리어로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은 이후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산업의 중심은 IT가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두 회사인 구글과 애플을 거쳐 지금의 내가 있다. ‘나희도’처럼 시대가 나를 도운 것일까.

구글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나는 아르바이트와 언론사 입사 준비를 병행하며 아등바등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한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게 되면 언론사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겠다는 순진한 착각을 품었다. 그러나 멋진 커리어를 쌓으며 생활비를 벌고, 퇴근 후 공부해서 결국 진짜 원하는 꿈도 이뤘다는 아름다운 엔딩은 없었다. 한동안 나는 꿈을 포기해야 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뉴스를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흔들림 없이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나간 파도를 너무 오랫동안 생각했다.

“우리를 기다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계획했던 삶을 기꺼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We must be willing to get rid of the life we planned so as to have the life that is waiting for us).”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쓴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이다.

어느 날 동해에서 서핑을 했다. 높은 파도에 휩쓸려 바다의 잔해와 부딪혀 이마가 찢어졌다. 스물한 방이나 꿰매야 했던 깊은 상처였다. 한동안 바다에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무지갯빛 바다가 순식간에 ‘피바다’로 바뀐 것이다. 결국 나는 중독(?)을 이기지 못하고 수술 후 다시 입수했는데, 그때 우연히 엄청난 파도를 잡았고 소위 말하는 ‘인생 라이딩’을 즐겼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똑같은 바다가 나에게 아픔과 행복을 안겨줬다. IMF라는 파도는 내게 상처를 주었고, 흘려보낸 언론인의 꿈은 오랫동안 가슴을 뻐근하게 했다. 하지만 파도는 또 온다. 인생은 계속된다. 어떤 것이 당신을 할퀴고 지나갈지,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줄지는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바다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멈추지 않는 한, 꿈은 계속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지금 회사에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하던 대로 글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만난,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난춘(亂春)이었다. 전하고 싶은 마음은 이것이다. 너무 확신하지 않을 것, 벗어난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말 것. 남들과 다른 선택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 지나간 파도는 생각하지 말 것. 벗들의 봄이 어지러운 난춘(亂春)이 아닌, 어지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난춘(暖春)이길 바란다.

박세라(영문·15년졸) 애플 재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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