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철학을 비판하며 새로운 형태의 실용주의를 제창하는 미국의 철학자 로티의 목소리가 점차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로티 철학의 출발점은 철저한 반전통에서 시작한다.

“철학은 자연의 거울이 아니다”“인식론 중심의 철학은근대철학이 지어낸 허구의 형이상학에 근거하고 있다”“이제 는 탈철학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그의 이러한 앙칼진 외침들은 모두 ‘반 표상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언어의 바깥으로 나가 언어를 거짓의 표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세계’나 ‘실제’와 비교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마치 피부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듯이 우리는 언어나 해석의 세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따라서 역사나 문화를 초월하는 항구적인 버팀판들, 가령 이데아, 명석한 관념, 선험적 자아, 분석명제, 필연성의 진리 등 전통철학의 온갖 심오한 장치나 관념들은 로티에겐 모조리 비판과 해체의 대상일 뿐이다.

이같은 반표상주의의 귀결은 우연성을 수용하는 것이며, 역사성과 시간성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다양성을 한껏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지평이 허무주의나 상대주의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고 본다.

로티는 다양성을 바탕으로한 자유주의 사회의 힘, 자기비판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로티는 가능한 모든 대안들을 “자유롭고도 개방된 만남”의 장인 대화의 테이블에 얹어놓고 , 그중 최선의 실행을 “강제되지 않은 합의”를 통해 선택해가는 것이야말로 역사주의자인 실요우ㅈ의자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는 연대성을 지향하는 ‘자문화중심주의’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미 굳어진 언어를 출발점으로 삼되 그것의 문제점을 노정하면서 점차 개선해가자는 점진적 개혁주의의 표방인 셈이다.

한폄 반표상주의자는 아무런 근거성도 내세울 수 없다.

근거성을 외면한 다음로티는 근거성 없고 우연성에 의해 지배되는언어의 세계를 낭만주의, 역사주의, 실용주의로 채색하려 한다.

그래서 그는 ‘심미화된문화’,‘문예의 문화’를 강조한다.

이것은 로고스 중심의 담론들을 문예중심의 담론으로 바꿔가자는 문화 패러다임의 전환론이다.

이제 문예화된 탈철학의 시대에서 철학자가 할 일은 교화, 대화, 문예비평 등으로 설정된다.

문예비평가로서 철학자나 지식인은 늘 사용하던 어휘조차도 포기할 태세가 되어 있는 ‘아이러니스트’일수 밖에 없으며, 참신한 메타포를 창안해 자아를 확대하고 새로운 개안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애쓴다.

그러한 일데 뛰어난 아이러니스트를 로티는 ‘대담한 시인’이라고 부른다.

가령 엘리엇이나 오웰은 물론이고 뉴턴이나 다윈이나 프로이트, 혹은 칸트나 비트겐슈타인, 혹은 허준이나 정약용등도 문화의 큰 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참신한 어휘나 메타포를 창안해낸 대담한 시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담한 시인은 새로운 어휘의 창안자이다.

기존의 어휘가 못했던인,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점 드을 깨우치게 해주는 참신한 어휘나 메타포를 창안하는 자가 대담한 시인이다.

그래서 대담한 시인은 남의 어휘를 사용하는 것을 죽는 일 보다 더 싫어한다.

따라서 대담한 시인은 의도적으로 텍스트를오독하는 강한 텍스투얼리스트가 되기도 한다.

그는 저자의 의도나 텍스트 내의 비밀스런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석자의 의도에 텍스트를 짜맞춘다.

로티의 문예 문화에서는 대담한 시인의 길을 옹호하고 권장하는 것이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다.

진리의 추구라는 ‘강박관념’을 비판하는 반표상주의나, 끝없는 다양성과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들을 존중하는 자문화 중심적 실용주의의 의도 속에는 대담한 시인의 폭넓은 활동을 위한 배려가 깔려 있다.

자유와 다양성 그리고 실용주의적인 문제 해결능력 등은 대담한 시인의 놀이마당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조건인 셈이다.

이러한 대담한 시인은 민주주의에 투철하고자 한다.

그는 권력에의의지가 아니라 인류의 연대성을 지향한다.

대화와 강제되지 않은 합의를 통해 ‘우리의식’을 넓혀가자는 프로그램이다.

비록 우연한 것이지만 우리의 자문화를 수용하고 거기에서 출발하여 참신한 어휘의 창안을 통해 끊임없는 수선의 노력을 해나가 마침내 타문화의 사람들도 ‘우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도록 그 테두리를 넓혀가자는 주장이다.

로티는 그러한 과정에서 표상주의에 입각한 논증은 쓸모가 없다고 본다.

논증이란 악당이나 성인에게 중립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로티는 연대성을 지향하는 그러한 과정은 오히려 설득을 통해 이뤄지며, 설득은 매우 구체적인 것들 가령 민속풍물기록이나, TV프로그램이나, 만화나, 도큐드라마나, 소설 등이 더 잘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가 왜 추상적인 개념중심의 문화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외치는지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이다.

이를테면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데에는 그것의 이론적 맹점을 논증한 철학이론들 보다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재서술을 통한 설득이 더 주효하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문화가 신화, 철학, 종교, 과학의 시대를 지나 바야흐로 문예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주장하며, 문예의 시대에서는 무엇보다도 예술과 정치가 지식인의 주요 관심사가 돼야 한다고 외치는 로티교수가 한국에 온다.

그는 아카데미하우스에서 (12월9일과 10일) 자신의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보는 철학과 과학과 도덕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대담한 시인을 문화의 영웅으로 보는 로티의 담론에 대해 귀가 솔깃해지는 사람이건, 혹은 반대로 관념론자들의 고집스런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손을 쳐들고 싶은 사람이건 한 번쯤은 맞부딪쳐 볼 기회일 것이다.

로티가 얘기하는 강제되지 않은 합의의 도출에 성고하건 실패하건 간에 그것은 자유롭고도 개방된 만남의 대화일 것은 분명할 터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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