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착한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 놀랐어.”

2021년 초, 연예계에 가스라이팅 논란이 일며 가스라이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높아졌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타인이 자신을 의심해보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정서적 학대이며 모든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행위이다.

가스라이팅 용어의 기원이 된 것은 연극 <가스등(Gas Light)>이다. 이 연극에서는 ‘잭’이라는 남성이 자신이 살고 있던 집 위층의 보석을 훔치고자 가스등을 켠다. 집끼리 가스등을 나눠 쓰는 상태였기에 이웃집이 어두워지게 돼서 잭은 아내인 벨라의 의심을 피하고자 상황을 조작한다. 잭은 보석을 찾는 행동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집안 물건을 숨긴 채 아내 ‘벨라’가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그녀를 질책한다. 잭이 보석을 찾고 있으면, 벨라는 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고 말하지만, 잭은 벨라를 과민반응자‧정신병자로 몰아세운다. 이처럼 가스라이팅의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상황을 왜곡하는 발언,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 실수를 과장하는 발언 등을 반복하여 피해자를 억압하고 무력하게 만든다.

내게 있어 2021년은 과거의 나와 내게 있었던 사건들을 학문과 연결해 파악하고자 노력한 해였다. 특히 나는 나의 전공(국어국문)과 복수 전공(인문예술미디어) 수업에서 각각 ‘가스라이팅’ 관련 단편 소설(「현남 오빠에게」 「괜찮은 사람」 「우리는 사랑했다」등)을 분석하고, ‘가스라이팅’ 주제의 연극을 기획하며 가스라이팅에 주목했다. 2022년에 접어들며, 이제 나는 내가 가스라이팅에 주목한 이유가 2021년 초 내게 있었던 일련의 사건 때문임을 안다.

나는 2020년 중순에 한 연합동아리에 들어가 운영진을 맡았다. 거기에서 ‘그 사람’과 친해졌다. 그와 동아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끔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와 친해진 결정적 계기는 내가 잡지부를 구성하면서였다. 나는 동아리 내에서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었고, 잡지부에 지원한 그와 둘이서 동아리 잡지의 내용, 목차, 표지 디자인을 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와 관련하여 상의할 일이 생겨 차기 회장이 될 그 사람에게 전화하기로 했다. 얘기를 다 한 후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 사람은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너는 내가 편해?”

최근 들어 친해져서 편하다고 했다. 그 이후에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 나는 내가 무언가 실수한 게 있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네가 잘못했다는 건 아닌데”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그 사람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썅’이라고 욕을 했다는 것, 그리고 카톡 상에서 ‘ㅋ’을 쓴 것에 관해 불편했다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내가 ‘썅’을 했을 당시의 나는 놀라서 곧바로 사과했고, 그 사람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누군가 ‘ㅋ’과 같이 축약어를 쓰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이어서 한 말은 “네가 착한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 놀랐어”였다.

당시의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내가 당신의 기대를 채워줘야 하냐고 했다. 그 사람은 그건 아니지만, 평소의 ‘나’는 예쁘게 말하는 착한 이미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벗어나서 당황했다고 한다. 설전이 오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너는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어”였다.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으니 끊자고 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그 사람에게 목적어 없는 사과 카톡이 와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당신과 더는 친하게 지낼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그렇다면 더는 잡지 만드는 일에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나도 불편하지만. 현재 인원이 둘밖에 없고, 처음 기획한 사람으로서 첫 번째 잡지 제작을 완수하는 일에는 책임을 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내가 자신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동아리 운영진과 잡지 제작을 그만두는 쪽을 택했다. 그 사람은 ‘차기 운영진이 될 사람들에게 ‘이 일’에 관해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한동안은 동아리 카페에 글을 올릴까 고민했다. ‘‘이런 행위’를 통해 동아리 멤버에게 피해를 준 회원이 회장으로 활동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라고 적고 싶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행위’에 관해 공감하고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지 두려움이 생겼다. 그리고 ‘이런 행위’란 무엇인가, 나는 이 일이 단순히 한 인간을 한 프레임 안에 가둬놓고 폭력적으로 대한 일뿐만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제는 그 이유의 정체를 안다. 이후에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해당 ‘사건’에 관해 계속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고, 조언을 구했다.

아직 내게 있어 본 글의 시작 앞에 적어놓은 문장은 안타깝다. 이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나의 애도가 다 이루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가스라이팅을 행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여전히 여성의 이미지를 고정하려 하고, 심리를 조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성들 사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도 그랬고 지금의 나는 한 사람을 고정된 이미지에 가둬놓고 조작하려는 일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을 기울어진 쪽으로 밀어버리는 일을 자행하는 사람들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나를 포함한 우리가 지나친 자기 검열을 삼가기를, 다른 여성들의 문제와 아픔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해결하는 사람으로 행동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