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캐스팅보트 20대
투표로 전해야 할 메시지
“지켜보고 있다”

박초롱(언론정보·10년졸) 연합뉴스·연합뉴스TV 기자
박초롱(언론정보·10년졸) 연합뉴스·연합뉴스TV 기자

2011년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기자로 입사. 경제부, 사회부를 거쳐 현재 연합뉴스TV 정치부에서 여당 취재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왜 크로마를 안 찍는 거야?”

대선 D-10 저녁, 동생이 내게 물었다. 놀라서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대수롭지 않은 듯 짧은 답이 돌아온다. “응, 유튜브.”

초록색 배경을 깔고 인물을 촬영하는 크로마키는 대선 개표방송의 토대다. 이걸 찍어야 화려한 그래픽을 입혀 후보들이 뛰고, 날고, 겨루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약 빨고 만들었느냐’는 반응은 큰 칭찬이다. 우리 회사는 윤석열 후보가 크로마키 촬영에 응하지 않은 5개 방송사(KBS·MBC·JTBC·연합뉴스TV·YTN) 중 하나라 고심이 컸다. 선거는 다가오고 후보는 꿈쩍 않고…. 우리만 아는 내부 사정이라 생각했던 걸 업계 줄임말까지 쓰며 물으니 놀랐던 거다.

기자 일을 한 지 12년째다. 2018년 지방선거부터 총선,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을 거쳐 대선까지 연달아 네 번의 선거를 취재하고 있다. 이번 대선이 지난 선거와 다른 점? ‘기자들만’ 아는 정보란 거의 없다는 거다. 크로마키 촬영에 대해 동생이 물었듯. 언론이 7∼8시간 분량의 녹취 파일을 편집하고 선별해 보도하면, 바로 어떤 유튜브 채널이 원본을 그대로 틀었다. 녹취록·통화녹음·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메시지 캡처들이 떠돌아다녔다. 취재 과정에서 이재명·윤석열·심상정 후보를 가장 많이 만난 곳은 다름 아닌 유튜브 채널 안에서다. 후보가 제주에 있든, 부산에 있든 각 당에선 유세 발언 하나하나를 생중계한다.

입사했을 때 배운 건 ‘10만큼 취재해 1만큼 쓰라’였다. 그만큼 폭넓게 취재해 고갱이를 골라내라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취재한 10을 모조리 써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튜브든 SNS든 어디에선가는 내가 쓰지 않은 얘기들이 떠돌았다. 죄책감을 느끼며 때론 12, 13까지 써 내려가는 나와 동료들을 발견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중 어디에 현미경을 들이대야 할지 때때로 길을 잃었다.

20대가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가 된 건 이런 현실 속에서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능력이 그 어느 세대보다 뛰어나서라고 본다. 이들은 이재명·윤석열 양강 후보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마다 가차 없이 마음을 돌려 대안을 찾았다. 여론조사 결과가 한 주 단위로 휙휙 움직이는 걸 보며 놀랄 때가 많았다. 종잡을 수 없으니 ‘잡은 고기’ 취급을 할 수 없다. 정책 공약과 비전 제시를 예전 방식으로 해선 먹히지 않는 것, 후보들도 알고 있다.

작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에서 20대 남성들은 유권자 집단으로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72.5%의 지지를 보냈다. 60대 이상 지지율보다 높은 수치였다. 그 결과 한국 정치에서 배제돼왔던 세대의 분노와 박탈감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건 긍정적 지점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를 매개로 ‘이대남의 여론’이라면, 그것이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논의·검증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즉각 반응했다는 데 있다. 이러는 사이 20대 여성들의 구심력이 될 정당이나 후보는 마땅치 않게 됐다.

이 시점에서 어느 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법정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보통은 사건 관계자나 기자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는 방청석이 한 무리의 여성들로 꽉 들어찼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면서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갔다. 이후 여기저기서 같은 모습을 맞닥뜨렸다. 이들은 김학의, 장자연, 버닝썬 사건 등 성범죄 사건 재판마다 빠짐없이 들어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다.”

그 효과? 이들이 들어오는 재판 취재 땐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기사를 잘못 써서 욕 얻어먹을까 봐. 이런 느낌, 기자만 받았을까. 3월 9일, 투표를 통해 보여주는 게 좋겠다. “지켜보고 있다.”

‘현상 유지’를 넘어서기 위한 20대 여성의 선택지가 복잡해진 걸 안다. 끝까지 고민이 될 것이다. 대선 취재 과정에서 많은 힘을 얻은 룰루 밀러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문장들을 공유하고 싶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이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의 희망까지도 어느 정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지 모른다.”

기자인 나는 한 문장을 더 맘에 새겼다. “당신이 할 일은… 단어들을 늘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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