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침체와 함께 70년대 후반부터 선진제국을 중심으로 각 정파에서 제기된 복지국가 위기론과 현실 정치에서의 신보수주의정권의 득세는 복지국가의 위기를 현실화시켰으며, 이에 따라 선진복지국가의 재구조화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의 대처정부 및 미국의 레이건 정부에서 보여진 복지예산 삭감·민영화·노동조합 의 억압·복지수혜 요건의 강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정치경제적 상황 아래서 후발국인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제대로 싹도 자라지 못한 채 왜곡되고 움츠러들고 있다.

이는 김영삼 정부가 지난 2월 국민복지기획단을 통해 내놓은 국민복지 구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적복지모형의 기본 내용은 재정적인 국가책임은 최소화하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복지제도 중심으로 이끌어나가겠다는 ‘생산적 복지’의 구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GDP의 20~40%를 사회보장지출로 사용하고 있는 선진국과 기껏해야 GDP의 3.7%(1994년), 그것도 중앙정부 지출은 GDP의 1.21%를 쓰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발전방향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에 잇어서, 그 타당성 여부이다.

이는 경제로서는 중진국이지만 복지로서는 후진국인 우리나라가 비로서 그동안 성장위주 정책에서 소외돼 온 국민들에게 복지를 해보려고 하는 시점에서 국가책임을 또 한번 거부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후발국은 선진국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선진국과 발달단계가 다르므로 복지제도가 고도로 성숙한 선진국에서 논의되는 국가개입 최소화, 민영화 등의 수식어를 액면 그대로 성급하게 적용하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선진국의 경우 복지 위기를 겪으면서도 실제로 전반적인 복지규모가 축소되고 있지는 않으며 , 복지제도의 골간은 거의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선진국과 달리 기초적인 복지를 포함하여 복지의 제도화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이므로 사회복지예산을 축소하기 이전에 다음의 점이 최소한 견지돼야 한다.

첫째, 살질적인 최저생활이 보장돼야 한다.

국민복지기획단의 복지구상을 보면, 근로능력이 없는 빈곤계층에게는 최저수준 보장을, 근로 능력이 있는 빈곤계층에게는 자활여건을 제공하는 빈곤대책의 이원화를 표명하고 잇다.

이러한 빈곤대책의 이원화는 선진국에서 보여지는 근로유능력자에게는 근로를 전제로 한 복지급여 원칙의 강화 움직임과 유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빈곤대책의 이원화라 하더라도 선진국과 우리는 기존의 빈곤대책 내용이 너무나 달라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선진국의 빈곤대책은 빈곤상태에 있는 누구나가 최저수준의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부여하고 잇지만, 우리나라는 소득·자산이 최저수준 이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최저수준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잇는 체계가 아니다.

노령·아동·폐질등으로 근로능력이 없어야 하고, 부양의무자가 없어야 한다.

현행 생활보호체계내에서 행활보호대상자 2백만명 중 최저생계비 명목으로 제공되는 생계보호급여 수급자는 40만명이 채 안되는 전인구의 0.9%에 불과하며, 나머니 1백60만명은 생계보호를 지급하지 않는 자활보호자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빈곤대책의 이원화 논리에 따르면 자활보호자는 자활 가능한 자여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는 것에 있다.

자활보호가구중 48.8%의 가구주가 노령·연소·장애·폐질로 근로능력이 없는 자활불가능 가구이다.

따라서 현행 새ㅎ뢍보호제도는 생계보호가 필요한 거택보호유사자는 거택보호로 흡수하고, 자활보호는 자활가능한 대상자로 하는 등 생활보호제도의 기본틀을 전반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민보건서비스 체제의 재확립이 요구된다.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체계는 질병 및 사고로 치료를 요하는 누구나가 의료서비스를 현금장애 없이 받을 수 있는 체계가 아니다.

의료보험 보장항목에서 제외된 급여가 너무 많아 본인부담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가구주나 가구원의 질병 혹은 장애가 빈곤상태로 떨어지게 하고 빈곤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의료보장의 질적 개선은 생산적 복지의 구현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예산의 절대적 증가가 요구된다.

재정은 모든 제도의 발전과 한계를 결정적으로 규정짓는 요인이다.

생산적 복지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라고 그동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온 재정의 획기적인 증대가 필수적이다.

재정이 확보되지 않으면 복지 방향을 둘러싼 논의들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넷째, 복지제공 주체의 다원화가 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의 축소나 면제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민간이 맡는 부분은 국가가 기초적 책임을 다한 이상의 부분이어야 한다.

즉, 민간에게 기초적인 복지부문까지 떠맡기는 형태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중요한 것은 사회복지의 발전 없이는 종국에는 경제발전도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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