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가장자리를 찾는 새로운 시도

복잡성 과학은 환원주의에 바탕은 둔 현대과학의 한계점을 전일주의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뇌·인간·경제·생태계처럼 수많은 인자들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계의 발현은 단순히 그 구성요소인 각 인자들의 성질을 합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과학의 전제가 되는 생각이다.

생명이란 어떻게 발현되는가?인식이란 어떻게 얻어지는가?또 진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복잡성 과학은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의 틀거리로 이해하기 위해 통일된 대합성 이론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복잡한 계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공통점을 살펴보면 첫째,이러한 계들은 병렬적으로 행동하는 수많은 인자들로 구성된 그물망이다.

더욱이 이 그물망 속에는 전체를 통제하는 중앙 사령탑이 없지만 걸맞는 행동을 보인다.

둘째,이들은 여러 층의 조직 단계를 가지며 각 단계마다 새로운 기초단위들을 형성한다.

이들은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자신들의 조직을 개조하고 재배열하게 된다.

진화란 이러한 기초단위들의 교정과 재결합이다.

셋째,이러한 계들은 미래를 예건하고 이에 대응한다.

이들은 환경에 대한 자체 내부 모형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환경에 대응한다.

우리가 학습을 통해 죄 속에 수많은 암시적 예건들을 새겨놓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이러한 계들은 초단위들이 택할 수 있는 새로운 지위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환경에 보다 낫게 적응하기 위해 이들은 자신들을 변화시킨다.

물론 환경에 대한 적합성을 극대화 하는 것은 마치 모래사장에서 가장 모나지 않은 모래알을 찾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이들은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가능성의 공간을 탐험해 나간다.

이러한 복잡한 적응계는 눈송이와 같이 복잡화되 정적인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매우 역동적이고 자발적이다.

또 무질서해 보이지만 혼돈으로 알려진 예측불허의 소용돌이와도 다르다.

그렇다면 이들이 다가가려 하는 곳은 어디인가? 또한 그 곳으로 향하는 추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 두가지 질문이 복잡성 과학이 대답하려고 하는 핵심이다.

이들은 질서와 혼돈의 경제에 서있다.

혼돈의 가장자리라고 불리우는 이 경계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구조들이 완전히 와해되어 버리지 않을 정도의 안정성을 지니게 되며, 동시에 개발과 탐구를 통해 새로운 구조를 세워나갈 정도의 유동성을 지니게 된다.

혼돈의 가장자리는 질서와 무질서가 힘을 겨루는 전쟁터이며 복잡한 적응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장소이다.

즉 복잡한 적응계는 자체조직화와 적응을 통해 혼돈의 가장자리로 다가가며 또한 그 속에서도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구조로 진화해 나간다.

과거 우리가 배운 지식으로는 고립된 계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점점 더 무질서한 상태로 분해되어가며, 그 무직질서도를 계량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엔트로피이다.

하지만 외부의 개입이 충분히 크다면 부분적으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아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아왔다.

충분한 영양 공급만 있으면 나무는 작은 씨로부터 커다란 구조로 자란다.

어린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계는 오히려 점점 구조가 복잡해져 간다.

강력한 외부환경 속에서는 기존의 제2법치과 정반대가 되는 새로운 제2법칙이 존재하고 있으며,이를 정확히 정의학 위해서는 복잡성의 정도를 계량화할 수 있는 수학적인 양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아직은 그 추진력을 알기 이전에 적응·복잡성·생명·발현과 같은 용어들의 의미조차 안개 속에 쌓여있다.

지금의 상황은 열역학 제2법칙이 정립되기 전인 19세기 중반의 혼란시대와 비슷하다.

복잡성 과학의 핵삼은 바로 이 새로운 제2법칙을 체계화하는 데에 있다.

생명이 어떻게 발현하는가 또 생명체는 왜 지금과 같은 모양새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무생물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생명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와 같은 궁국적인 질문에 대해 보다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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