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전작들보다 성별, 인종적으로 훨씬 다양해진 영화 <이터널스>가 개봉하면서, ‘PC’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PC란 ‘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 한국말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하며, 차별 요소를 최대한 없애려 노력하는 것 등을 일컫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이 전보다 더 가시화되고,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여러 매체에서 이러한 ‘PC’를 반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PC’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분명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이터널스>만 해도, "PC 주의에 절었다" 같은 의견이 인터넷상에 나와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품을 ‘PC’가 망쳤다-라는 주장이다. PC 요소로 인해 여러 의견이 등장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의 예고편에는 이런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PC를 안 섞으면 죽는 병에라도 걸렸나”, “인종 차별은 아니지만 흑인 캐스팅은 좀”, “근대 유럽이 배경인 거 같은데 흑인 동양인 백인 등 다양한 인종들 섞이니 이질감 드네”, “과도한 PC로 시대에 안 맞는 흑인 배역들이 어색함을 계속 느끼게 하네요”, “또 PC질 시작이네”, “PC질 그만”

위 댓글은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에 올라온 <브리저튼> 공식 예고편에 달린 댓글을 직접 인용해온 것이다. 이들이 이러한 댓글을 남긴 이유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종 때문이다. <브리저튼>은 신분제 유럽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공작인 남자 주인공을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 그뿐만 아니라, 드라마에는 흑인뿐만 아니라 동양인까지 다양한 인종이 등장한다. 하지만 위의 댓글들은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PC가 작품을 망쳤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브리저튼>은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시대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로맨스 장르의 문법에 치중해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Thank you next’ 같은 팝송이 무도회 장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브리저튼>은 그저 시대적인 배경만 가져다 썼을 뿐, 주가 되는 내용은 공작과의 ‘계약 연애’이다. 그런 상황에서, 흑인 공작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과한 PC함인 것일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작품이 정말 망쳐졌다면, 그 원인은 과연 과도한 ‘PC’에 있는 것일까? 물론, ‘PC’를 담은 미디어들이 아직 어색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녹여내지 못한 연출과 각본의 역량 부족 때문이지, 그것이 PC를 추구했기 때문은 아니다. 한송희, 이효민의 <영화와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쟁: <캡틴 마블>과 <어벤져스: 엔드게임>, <인어공주>를 중심으로>에서는 이에 대해 “정치적 올바름과 영화의 미학적 성취는 종속 변수가 아닌 독립 변수”라고 설명한다. 즉, 작품의 완성도와 ‘PC’는 별개이며, ‘PC’의 여부가 작품의 오락적, 미학적 완성도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완성도의 부족을 PC에 탓하고 있는 것일까?

‘PC’를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차별을 정당화하고 싶은 욕구처럼 보인다. 차별은 하고 싶지만 차별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싶지는 않은 그런 어떤 것. 그래서 ‘PC’에 탓을 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저것이 이상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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