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긴 여정을 잠시 멈추고 쉼표를 찍었다. 학기를 보내던 중 돌연 중도 휴학을 선언했다.그동안 생각했던 공부를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복학할 때 즈음에는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22년을 살면서 이루지 못한 걸 고작 한 학기 만에 이뤄낼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기대를 했다.

휴학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강의를 듣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는 것, 시험 기간에 대한 자각이 점점 옅어진다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을 제외하면 모든 게 그대로였다. 사실 나는 겁이 많다. 필연적으로 늘 두려웠다. 내 실패도 두렵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실패도 두려웠다. 나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싫고, 누군가의 약한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휴학도 그랬다. 그 기간을 알차게 채우지 못하면 인생에 큰 공백이 생길까 무서웠다. 그랬던 내가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한 건 알찬 인생 계획이나 누군가의 지지도 아닌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야구에는 수많은 쉼표가 있다. 9회라는 긴 이닝을 소화하는 동안에도 중간에 한 번 그라운드를 정비하는 시간인 ‘클리닝타임’을 갖는다. 선수들 개개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야구에는 ‘3할 타자’가 있는데, 각자에게 찾아온 열 번의 기회 중에서 일곱 번은 그냥 쉬어버리고 세 번만 성공시키는 것이다. 고작 세 번? 그렇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선수들도 3할을 친다. 나는 실패가 두려워 뭔가를 하는 게 망설여질 때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했다. 내 인생은 9회보다 더, 어쩌면 연장전을 간다고 해도 모자랄 만큼 긴 여정이 될 텐데 왜 단 한 번의 휴식기조차 갖지 않으려 했는지. 리그를 평정하는 선수들도 열 번이나 찾아온 기회 중에서 일곱 번을 시원하게 말아먹는데, 왜 나는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할 수 없다며 자신을 옥죄었는지. 오만함에 가까운 강박을 반성하다가 이내 마음을 비우고 무엇이든 해본다.

어쩌면 난 실패보다 사랑하는 이들의 기대와 실망이 더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답하지 못하는 걸 퍽 배은망덕한 일처럼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더 길게 쉬고, 더 많이 실패한들 어떤가. 내가 응원하는 팀에는 3할 타자가 단 한 명뿐인 데다가 가을야구에 가지 못해 남들보다 긴 휴식기를 가지지만 나는 아무래도 영원히 이 팀을 사랑하게 될 것만 같은데.

여덟 번, 아홉 번을 실패해도 타석에 들어서면 난 온 마음을 다해 기대하고, 응원하고, 이들의 성공을 기뻐할 텐데. 이제는 생각한다. 야구에 클리닝타임이 있듯이, 3할 타자의 이면에는 7번의 실패가 있듯이, 끝없는 실패와 쉼과 도약의 반복 속에서 난 그저 내 길을 가면 된다고. 내가 찍은 쉼표는 빛나는 9회 말을 위한 클리닝타임이었다고. 여러번 실패해도 다시 찾아온 기회 앞에 당당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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