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필름 카메라를 쓰면 필름을 끼우고 처음 찍는 두세 장은 아예 안 나오거나 이런 식으로 덜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다음 장면으로 쉽게 이전 장면을 잊는다. 그렇게 36장을 다 찍고 현상한 필름을 본다. 그제서야 내가 잡았지만 끝내 놓친 것을 회상한다.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도망간 수백 분의 1초를 그리워한다. 무엇이 찍히다 말았을까. 내가 뭘 보고 셔터를 눌렀더라. 36장을 빨리 채우면 기억이 나서 아쉽고, 느리게 채우면 기억이 안 나서 아쉽다. 36분의 1을 소비할 만큼 마음에 들었던 순간도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사라져 버린다. 좋은 순간은 글로 적어두는 습관을 들인다. 카메라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 기억은 오롯이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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