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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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한민국 콘텐츠의 황금광 시대’이다. 대중음악에서는 BTS, 드라마에서는 <오징어 게임>, 영화에서는 <기생충> 등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 평론가의 호평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단군 이래 한국 문화 최대의 호황기’라고 평하지만, 본래 우리는 구비 문학의 시대부터 디지털 문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늘 콘텐츠와 놀이 문화에 진심인 편이었다. ‘한판 놀아보자’라는 우리말이 네이버 파파고로는 ‘Let's have fun.’, 구글 번역기로도 ‘Let's play a game.’으로 밖에 번역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우리는 고유한 판의 놀이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한국 콘텐츠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사용자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참여 문화이다. 예로부터 우리의 놀이 문화에서는 참여자인 대중을 텍스트 바깥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텍스트 안으로 들어와 자유로이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해왔다. 

또한 한국 콘텐츠는 다양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융합적 성격을 갖고 있다. 글로벌의 보편성과 로컬의 특수성, 뉴미디어 기술과 덕후적 작가주의를 적절히 배합해 시대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창작하고 있다. 가령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 서사 양식인 웹툰의 경우, 웹툰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국 특유의 인터넷 참여 문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서 탄생했을 만큼 대중 친화적인 동시에 신기술에 민감한 분야이다. 여전히 제작 환경 및 유통 구조의 개선 등 텍스트 외부에서 풀어야 할 난제들이 있기는 하나, 현재 웹툰은 21세기의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특유의 서사적 기법으로 재현해내는 것은 물론, IP(지적재산권)를 기반으로 소설, 게임, 드라마, 영화 등으로 매체 변환되면서 한국 콘텐츠의 원형이자 보고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지난 20세기의 대표적인 이야기 양식이라 할 만한 소설과 영화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확장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11월 8일 기준 국내 누적 관객 수 약 100만을 넘어선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듄>의 경우, 1965년 미국에서 발표된 프랭크 허버트의 SF를 원작으로 삼고 있으며, <마블>의 멀티버스(multiverse) 역시 1960년대 펄프 픽션 시대의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자연히 인쇄문학 시대의 소재 및 주제, 무엇보다도 서구 중심적 가치관, 선형적인 서사 전개 방식 등에 제한을 받게 된다. 

대중음악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중음악 콘텐츠와 비교할 때 한국 아이돌 콘텐츠는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며 팬덤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고 발전하며 트랜스미디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가령 2013년 6월 13일에 데뷔한 BTS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트위터와 브이로그를 통해서 팬들과 소통해 왔으며,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에는 미국 NBC의 <지미 팰런쇼>를 통해서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등장해 비장하게 <On> 퍼포먼스를 수행하는가 하면, 또 어느 날에는 유튜브 채널인 <방탄 TV>를 통해서는 김장을 담그거나 학교놀이를 하면서 희극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가상과 현실, 일상과 일탈, BTS와 아미를 넘나드는 가운데 하나의 입체적이고도 다각적인 콘텐츠를 완성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국내 콘텐츠 업계는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에 걸쳐 다시금 지각변동을 겪을 예정이다. <마블>과 <스타워즈>를 보유한 ‘디즈니 플러스(Disney+)’가 11월 12일 한국 서비스를 개시하며, 내년에는 <왕좌의 게임>과 <해리포터>를 보유한 HBO Max가 들어오는 등 글로벌 기반 다매체 복수 플랫폼 시대가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플랫폼의 성패,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콘텐츠’ 이다. 대중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 자체이지, 어떤 플랫폼인가, 어떤 기술을 접목했는가, 어느 국적의 작품인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저 콘텐츠가 즐겁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유행처럼 불고 있는 메타버스, 디지털 휴먼, 실감형 콘텐츠, NFT 등도 역시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사실 2011년에 한국 콘텐츠진흥원이 처음 설립될 당시만 하더라도 몇몇 해외파 연구자들이 ‘콘텐츠(contents)’라는 말은 콩글리시라며 ‘콘텐트(content)’로 표기해야 옳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불과 10여 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 관련 산업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 동력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쑥스러운 자화자찬일 수도 있겠으나, 이화여대는 이미 2002년에 디지털미디어학부 대학원 영상콘텐츠 전공을, 2016년에는 융합콘텐츠 학과를 설립하고 창의적인 융합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필자의 경우 콘텐츠 중에서도 콘텐츠 기획과 스토리텔링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래도 콘텐츠의 핵심을 이야기의 힘에서 찾는 편이다. 콘텐츠란 단순히 신기술의 실험 결과이거나 상업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상품이기 이전에, 좋은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한 노력의 결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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