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는 길면서도 짧다. 필자는 대학에 온 이후로 한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다음 해가 끝나갈 때, 작년에 적었던 편지를 읽어보면 그때의 내가 상상했던 미래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지를 체감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러한 변화들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인한 화학작용의 결과물이다. 그 만남이 오프라인이건, 온라인이건, 그 사람의 창작물이건.

모두가 한 번쯤은 해보았을 법한 경험이다. 해가 지나면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새롭게 속하게 된 집단. 그곳에서의 ‘나’는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훗날 돌아보면 결국 그곳에서의 ‘나’도 기존의 내게 녹아들어 또 하나의 ‘나’가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자기복잡성’이라는 단어를 아는가? 심리학에서는 자기 도식이 많다면, 높은 자기복잡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집에서의 자기 도식, 이화여대에서의 자기 도식, 동아리에서의 자기 도식이 있다면 각 도식은 역할, 관계, 특질 등 다양한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집에서의 내가 첫째 딸이며, 재미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학교에서의 나는 학생이며,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일 수 있다. 이러한 자기도식이 많은 것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집에서 있었던 부정적인 사건이 학교나 동아리에 간다고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파급 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 도식들은 구별되어 있기에 서로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다양한 자기라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아예 달라지는 건 아닌데, 정말 신기한 경험이지 않을 수 없다.

요 근래 들어서는 코로나로 인해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온라인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직접 만나는 게 소통할 때 더욱 좋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비록 온라인을 통한 방식이 아직 면대면 소통보다는 익숙하지 않고 피상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현재의 코로나 사태를 역이용하여 사람들이 언택트 소통에도 익숙해질 수 있다면 대면과는 다른 유형의 자기도식을 늘릴 수 있는 새로운 창구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사람 인(人) 자는 사람이 사람에게 기댄 형상이라고 한다.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기복잡성의 개념 또한 결국 혼자만 지낼 때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여러 갈래로 잘 유지되고 있을 때에 다양한 자신을 표출할 기회가 생기며 건강한 자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그만큼 사람에게 있어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되새기게 해 준다. 만약 이화인들이 타인에게 상처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다양한 자기도식으로 그러한 부정적 감정들을 빠르게 털어버리는 마음 건강한 자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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