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아(환경공학·11년졸)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이상아(환경공학·11년졸)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본교 환경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사이언스 시민과학프로젝트 운영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연구원 등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이 켜켜이 쌓인 침대 꼭대기에 올라가 외친다. 처절한 생존게임 속 그 대사는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우리 삶 곳곳에 들어맞는다. 내게는 기후위기가 그렇다. 그래, 이러다 진짜 우리 다 죽어.

거대하고 복잡한 지구 시스템을 단순화하는 데 무리가 있지만, 내게 지구는 이런 모습이다. 넘칠 듯 넘치지 않는 뜨거운 물이 담긴 컵. 표면장력으로 볼록 튀어나온 물 위로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진다.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하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뜨거운 물이 흘러넘칠 것이고 그때는…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고 겪지 않았어도 될 환경이 닥쳐올 것이다. 그러나 생존은 본능이므로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기후위기, 모두 죽거나 모두 살거나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 목표
정부·기업·시민 위기의식 갖고 대처해야 

무얼 할지 정하려면 문제가 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만 들여다보면 선명한 문제가 보인다. 지구 평균온도는 200년 사이에 1℃가 올랐다. 하루에도 기온이 10℃ 이상 바뀌는데 1℃가 무슨 대수냐고 물을 수 있다. 내 체온이 항상 평균 1℃ 정도 올라있다고 가정해 보자. 코로나 시대에 비정상 체온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지구의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산업 혁명이 도래한 시기 이후부터다. 산업혁명은 ‘검은 돈’이 시작된 서사와 함께한다. 누군가는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를 쉴 새 없이 태워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인류는 문명을 맛보았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탄소가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이는 지구를 데웠다. 이건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이자 힘과 경쟁,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탄소, 탄소를 잡아야 한다. 그래서 세계가, 우리나라가 살기 위해 ‘탄소중립(Net Zero)’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배출량 중 87%는 에너지에서 나왔다. 에너지의 60% 이상은 산업에서 소비됐다. 그럼,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줄여야 할 곳은 산업이다.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해서 덧붙일 말이 없다. 한 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산업계는 이에 합당한 책임과 계획을 갖고 있을까? 지난 10월 18일, 탄소중립위원회는 2018년 온실가스 총배출량 대비 2030년까지 순배출량을 40% 줄이겠다는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이하 NDC)’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처럼 대대적인 감축 목표는 처음”이라고 말했고 산업계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참고로 NDC에서 산업 부문 감축 목표는 14.5%인데, 이는 여러 부문 중 가장 적은 수치다.

맞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산업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분야이고 누군가에게는 하루하루의 밥벌이다. 그럼에도 기후위기가 눈앞으로 닥쳐왔는데, 지금까지 어떤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처하고 있었을까? 이명박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도 감축 목표를 세워놓고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 늘어났다. 기업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음은 드러났다. 이번에는 정말 실행할 의지가 있는 것일까?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안다면 ‘대대적’이라 생색내지도, ‘과하다’고 반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내 문제’로 체감하지 못하면 알아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이 지경까지 온 것인지 자문한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조차도 그렇다. 15년 전, 나는 학부 시절에 기후위기를 글로 배웠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숫자로 익혔던지라 감각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서야 삶에 돌봄 영역이 생겼고 세상에 나온 한 생명이 먹을 것, 앞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비로소 기후위기가 아프게 다가왔다. 기후위기라는 레이더망을 뻗자 불편한 문제들이 수도 없이 걸려들었다. 기후는 자연현상이라 먹고 입고 자는 삶의 기본요소를 아우른다. 식료품 가격 폭등, 비대면 생활로 폭증한 일회용 쓰레기 등 일상적 불편함뿐 아니라 전지구적 불평등까지 야기한다.

촘촘한 전력망 덕에 어디에서나 에어컨 바람이 나오던 올해 여름, 마다가스카르에서는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수십만 명이 기아로 허덕였다. 한 아이의 엄마는 “남편은 아사했고 나와 아이들은 8개월 동안 메뚜기만 먹고 있다”고 했다.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2019년도 기준,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9번째로 많이 배출했다.

다시 돌아가 보자. 무어라도 시도하면 나아질 것도 같고 도대체 너무나 거대해서 엄두도 안 나는 기후위기 앞에서 나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각자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정부는 정부의 몫을, 기업은 기업의 몫을,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문제의식을 가진 소비와 투표권 행사 등을 할 수 있다. 뻔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껏 제대로 되어왔던가.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살면서 만났던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웠던 풍경을 떠올려보자. 깜깜한 밤하늘에 쏟아질 듯 박혀있던 별, 해 질 녘 황홀한 색채의 하늘, 졸졸 흐르는 시냇물 위로 눈부시게 반짝이던 햇살. 이런 기억 속에는 자연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 이러한 정서적 교류는 자연스레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진다.

‘오징어 게임’은 한 명이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었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두 가지 결과가 놓여 있다. 모두 죽거나, 모두 살거나. 죽음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선택지는 하나다. 다 함께 모두 살아야 한다. 언젠가 개개인의 삶은 끝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사랑하며 감탄했던 것들은 계속 이어지리라는 희망만은 끝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상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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