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김석향 북한학과 교수
제공=김석향 북한학과 교수

 

매일 아침은 아니지만 달걀 삶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많다. 몇 년 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학생이 다른 음식은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유독 내가 삶은 달걀을 먹으면 기운을 차리게 된다는 말을 듣고 일주일에 한 판씩 달걀을 사서 몇 알씩 삶아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 학생은 곧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일자리를 찾아 떠났지만 나는 어느 덧 달걀 삶기의 달인 (?) 경지에 올랐다. 

달걀 삶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렇지만 실제로 달걀을 삶아보면 이 일도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 달걀삶기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지금도 나에게 여전히 성공은 어렵고 실패는 가깝다. 그 때문일까? 물이 팔팔 끓어오를 때 미리 준비해 둔 달걀을 한 알씩 밀어 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잠시 숨을 멈추고 조심스레 움직이게 된다. 조심조심 달걀을 넣었는데 한 알도 깨지지 않으면 성공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다. 

늘 하던 일이라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지금도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그 날 아침의 마음가짐과 준비 상태에 따라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한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일정이 바쁘다고 내 마음대로 서두르면 절대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며 준비를 갖추어 두었다가 정확한 순간을 포착해서 미리 계획해 둔 행동을 실천에 옮겨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내 경험으로는 북한학을 공부하고 북한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과정도 결국 달걀 삶기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남보다 오래 이 분야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나는 간혹 북한의 소행을 예측하는 비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런 요청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막상 요청한 사람이 정말 내 대답을 기다리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도 많다. 그렇지만 모르는 척하고 슬쩍 지나치기도 어렵다. 뭔가 한 마디 하지 않으면 나름 북한학과 교수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소홀히 한 것 같아 찜찜하기 때문이다.

결국 부족한 답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비법을 꺼내 놓는다. 내 비법의 핵심은 바로 “짧은 시간 내에 서둘러 북한의 움직임을 예측하려 하지 말고 먼저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노력하면서 행동해야 할 순간을 기다리며 실패해도 멈추지 않으면 자연히 필요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특별할 것이 없는 비법은 뭔가 커다란 비밀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 같다. 그렇지만 북한학 공부의 비법을 달리 표현할 방도는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반가운 사실은 짧은 시간 안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예측하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북한의 소행을 예측하는 비법 체득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그 비법을 구체적으로 누설해 보려 한다.

첫째, 자신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남북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입체적인 연표를 작성해 놓고 자주 보완하면서 그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이 방법으로 분단 이후 남북관계 속에서 북한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파악하면 일종의 기초공사를 마친 상태가 된다. 

둘째, 대한민국 전도를 펼쳐 놓고 군사분계선 북쪽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전체 지역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암기해야 한다. 평양 이외에 청진과 함흥, 혜산, 신의주, 무산, 종성 같은 지역이 어디쯤 있는지 파악하고 나면 정보를 흡수하고 이해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셋째, 분단 이후 북한당국이 지속적으로 발간해 온 신문이나 잡지, 연감을 뒤지면서 자신의 관심사를 연도별로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북한당국이 그 특유의 과장이나 은폐로 숨기려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넷째, 북한을 떠나 온 사람들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은 정말 유용하다.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들이 쓴 글을 읽어보는 일도 도움이 된다. 특히 그 사람의 출생연도와 성별, 거주지역과 학력, 직업 이외에도 북한주민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성분 등 주요 독립변수를 적용해서 내용을 분석해 보는 것은 최고의 비법이다. 

그건 그렇고 “북한학 공부하는 일이 달걀을 삶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제목을 이렇게 정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글을 읽는 이화인이 한 사람이라도 많아지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하루 삶을 이어나는 북한 내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이화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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