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할 채소를 나누어 담는 최세은(경영·19)씨(왼쪽)와 서강대 송휘수씨. 사진=김나은 사진기자
배부할 채소를 나누어 담는 최세은(경영·19)씨(왼쪽)와 서강대 송휘수씨. 사진=김나은 사진기자

 

버섯 다 가져가셨나요?

파프리카 빨간색이 좋으세요, 노란색이 좋으세요?

 

10월15일 오후6시30분, 신촌 히브루스 카페의 지하 공간이 작은 채소곳간으로 변신했다. 새송이버섯부터 파프리카, 마늘, 양배추까지. 깨끗이 손질된 채소들이 줄 서 있는 이곳에 손님이 한 명씩 찾아와 채소를 나눠 가져갔다. 비거니즘 지향 1인 가구 청년 공동체 '우리동네 채소곳간'(채소곳간) 프로젝트의 채소 꾸러미 배부 현장이다. 

채소곳간은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비거니즘 지향 청년들이 모여 저렴하게 비건 식재료를 나눠 먹는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만들어진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에서는 10월15일부터 12월3일까지 매주 테마에 따른 채소 꾸러미를 참여자에게 배부한다. 채소곳간은 최세은(경영·19)씨와 평소 친분이 있던 서강대 송휘수씨, 세종대 이다정(물리천문·21)씨가 함께 기획해 운영 중이며, 서울특별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지원금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송씨가 비거니즘을 지향하며 어려움을 겪은 경험은 채소곳간 기획의 발판이 됐다. 신촌에서 1년간 자취 생활을 하며 한 끼에 8000원이 넘는 비건식을 매번 사 먹는 것에 부담을 느낀 송씨는 직접 비건식을 요리해 먹기 위해 양배추를 구매했다. 그러나 4일 내내 양배추로 샐러드를 만들고 볶아서 요리해 먹어도 양배추는 좀처럼 줄지 않았고, 결국 썩어버렸다. 송씨는 “그 후로 채소를 마음껏 고르다가도 멈칫하게 됐고, 결국 익숙한 채소 위주로 먹다보니 편식을 하게 됐다”며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채소곳간 운영진은 위와 같은 비거니즘 지향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더 나아가 비거니즘 진입 장벽을 허물기 위한 방법으로 채소 꾸러미 배부를 선택했다. 최씨는 “다양한 종류의 채소를 조금씩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다 채소 꾸러미를 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첫 주 차 채소 꾸러미 레시피 안내 자료. 제공=채소곳간 운영진
첫 주 차 채소 꾸러미 레시피 안내 자료. 제공=채소곳간 운영진

프로젝트에서는 매주 채소 꾸러미 배부 전, 채소 꾸러미 테마를 선정한 뒤 테마로 선정된 재료를 주로 사용하는 3가지 요리 레시피를 안내하고 있다. 첫 주 차 채소 꾸러미의 테마는 '새송이버섯'이었다. 레시피로는 버섯 양배추 볶음, 버섯 구이, 버섯 크림 리소토가 소개됐다.

레시피에 대해 최씨는 “프로젝트의 취지가 요리하기 귀찮고, 요리할 시간 없는 대학생들을 위한 것인 만큼 무조건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고, 별다른 요리도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레시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송씨는 “크림 리소토 레시피를 예시로 들었을 때 유제품을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은 우유가 들어가는 레시피를, 유제품을 먹지 않는 ◆비건(vegan)은 우유를 ◆캐슈 소스나 두유로 대체한 레시피를 따르도록 하는 등 시중에 나와 있는 레시피들 대부분 채식 단계별로 다르게 소개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프로젝트 참여자 대부분이 완전한 비건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 채식 단계에 맞는 레시피로 요리할 수 있도록 레시피 사이사이 첨가 가능한 논비건 재료를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송씨가 배부할 채소를 손질하고 있다. 사진=김나은 사진기자
송씨가 배부할 채소를 손질하고 있다. 사진=김나은 사진기자

첫 주 차에 배부된 채소 꾸러미에는 위 레시피를 모두 만들어 먹을 수 있게끔 새송이버섯, 양파, 양배추, 마늘, 파프리카, 쪽파가 들어갔다. 채소 꾸러미에 들어가는 채소들은 모두 운영진이 직접 손질했다. 첫 배부 날 최씨와 송씨는 신촌 매그놀리아 공유 주방을 대관해 배부 전 1시간 반 동안 버섯 밑동을 자르고, 양파를 일일이 까며 채소 꾸러미 배부를 준비했다. 최씨는 “양파를 계속 까다 보니 눈에선 눈물이, 손에선 양파링 냄새가 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첫 주 차 채소 꾸러미 배부 당일, 참여자 11명 중 9명이 방문해 손질이 끝난 채소들을 가져갔다. 이들은 가능하면 다회용기를 지참해 달라는 운영진의 권고에 따라 각자 준비해 온 냄비, 에코백 등에 채소를 담아 갔다. 

강혜민씨가 꾸러미 속 채소로 만들어 먹은 요리들. 제공=본인
강혜민씨가 꾸러미 속 채소로 만들어 먹은 요리들. 제공=본인

이날 작은 냄비에 채소를 담아 간 강혜민씨는 채소 꾸러미로 새송이버섯 김치볶음밥, 파프리카 새송이 볶음, 새송이 덮밥을 만들어 먹었다. 강씨는 “프로젝트 참여 전에는 자취생활을 하며 항상 2~3인분 양의 채소를 구입했고, 다 먹지 못하면 상해서 버려야 하니 며칠간 같은 채소로만 식사했다”며 “채소곳간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어 좋았다”고 전했다. 이어 “첫 주 차 배부 후 각자 요리한 음식 사진들을 단톡방에 공유했는데, 사진과 함께 레시피를 공유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새로운 레시피 정보도 알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채소곳간 운영진 송씨는 “프로젝트를 하며 SNS를 통해서만 만나던 사람들이 직접 발걸음해 채소 꾸러미를 가져가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참여자 강씨 역시 “채식 지향인들이 모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앞으로 어떤 레시피가 공유될지 기대된다”고 전했다. 

10월29일 배분된 두 번째 채소 꾸러미의 테마는 '단호박'이다. 채소곳간은 12월3일(금) 일곱 번째 배부를 끝으로 활동을 종료한다. 최씨는 “12월 활동이 끝나더라도 프로젝트 운영진과 참여자들이 함께 비건 맛집을 찾아다니며 네트워킹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육류는 섭취하지 않지만 어패류와 유제품, 동물의 알까지 허용하는 단계로, 채식주의자의 길로 들어설 때 많이들 거치는 단계.

◆비건(vegan): 동물성 식품(고기, 우유, 달걀 따위)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인 개념의 채식주의자

◆캐슈 크림: 유제품 크림 대용으로 사용되는 크림. 캐슈너트과 두유, 올리브오일, 영양 효모, 레몬즙, 소금 등을 갈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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