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헥”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기어코 올라갔다. 중앙도서관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도 3층 800번대 서가. 그곳엔 헤세가 있다. 「데미안」(1919)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는 성장하는 청춘들의 고뇌와 인간 내면의 양면성에 대해 고찰을 통해 휴머니즘을 지향한 작가다. 혹여나 학업에 대한 압박감으로 힘들어한 적이 있다면 헤세가 답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의 자전적 초기작 「수레바퀴 아래서」(1906)를 읽다보면 대부분의 이화인이라면 자신과 똑같은 학창시절을 보낸 그에게 큰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헤세가 말했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가 고통과 인내하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찢어질 듯 아픈 사랑을 하는 이가 있다면 헤세의 산문, 단편, 시 모음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를 추천한다.

장차 왕으로 추대될 촉망받는 청년이었으나, 부와 권력의 무상함에 지쳐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 친구와 함께 고행길을 떠나는 주인공이 있다. 그러나 따라 나선 고행길도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 정신적인 방황을 하게 된다. 수차례의 정신적 번뇌 속에서 마침내 그는 몸을 던지려 했던 흐르는 강물을 통해서 시간의 초월, 즉 무상성의 극복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생의 진리를 깨닫는다. 헤세의 중기작 「싯다르타」(1922)다.

이처럼 그가 묘사한 청춘의 번뇌와 고통, 그리고 사랑에 대해 공감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헤세의 생애가 궁금해진다. 곱상하게 생긴 점잖은 외모와 달리 헤세는 결코 엘리트 코스를 걷지 못했다. 명문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신경쇠약증 등으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라는 생각에 신학교를 도망친다. 그 후 자살기도, 정신요양원 생활을 하기도 한 그다.

찾아보니 그가 ‘경계성 인격 장애’라는 다수의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에서도 약 50만 명이 앓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흔한 인격장애이다. 경계성 인격 장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조금만 질책을 들어도 자존감이 땅바닥으로 꺼진다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부모와의 관계마저 힘들다 ▲늘 이상한 사람과 연애를 해 관계가 언제나 엉망으로 끝난다 ▲ 자꾸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맞추느라 내 행복은 뭔지도 잊어버린다.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작가도 한없이 여린 인간이었다. 아니다 한없이 평범한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그였기에 전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오랜 시간 사랑받는 고전을 만들어냈으리라.

삶에 지칠 때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헤세가 있는 800번대 서가 앞에서 멈췄다. ‘나는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고민이 들 때마다 헤세는 말한다. “진리는 분명 있네.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가르침‘,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그것만 있으면 지혜로워지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 하네”(「유리알 유희」 중에서). 그가 세상에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헤세 문학의 총체라 불리는 「유리알 유희」(1943)를 다 읽지 못했다. 유려한 문체의 현격한 아름다움을 느끼면서도 스펙 쌓기에 바쁘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쩌면 학교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헤세를 만나고 가는 것이 스펙 하나보다 더 큰 용기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완독이 졸업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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