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 정책과학대학원 겸임교수·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정책과학대학원 겸임교수·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요즘 비혼, 비연애주의자가 늘었다지만 아직도 사랑을 꿈꾸는 젊은 남녀는 적잖다. 이들은 자칫 이성과 사랑, 그리고 결혼에 대해 장밋빛 환상을 갖기 쉽다. 매력적인 외모에 세련된 매너와 교양까지 갖춘 이상적인 짝을 찾아 헤매면서 그, 또는 그녀가 자신의 연인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종착역인 결혼을 통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그랬듯, 문화적 향기가 물씬 나는 지적인 대화를 꿈꿀지 모른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하지만 막상 연애와 결혼을 해보라. 인간의 삶이 얼마나 ‘동물적 본성’에 좌우되는지 절감하게 된다. 연인이나 배우자와 형이상학적이고 고상한 대화를 바란다면 꿈에서 깨시길. 특히 부부간 대화의 대부분은 “쌀 떨어졌다”, ”빨리 안 자냐”, “기저귀 언제 갈았냐“처럼 먹고, 자고, 애 키우는 것 같은 지극히 원초적이고 형이하학적 내용이 대부분이다.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의 한 구절처럼 인간의 삶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다”는 걸 사무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혼은 허접하다’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유경험자로서 나는 적극적인 결혼예찬론자다. 그저 결혼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동물적 본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임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중년 여성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 남자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나이 들수록 역사를 좋아하고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는 거다. 인간의 삶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금수와 다르지 않음을 긴 인생을 통해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동물의 왕국’ 등을 보면 수컷들은 오로지 종족 보존의 본능에 사로잡혀 움직이곤 한다. 심지어 수컷 사마귀는 도중에 암컷에 잡혀 먹힐 위험을 무릅쓰고 짝짓기를 시도한다. 그만큼 DNA에 박혀있는 종족 보존의 본능은 강렬한 것이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이 같은 진실을 사회적 윤리나 체면 탓에 우리는 숨기려 할 뿐이다.

이런 위선을 통쾌하게 깨부수고 인간이 얼마나 동물적 본성에 압도되고 있는지를 파헤친 명저가 바로 영국의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쓴 ‘털 없는 원숭이’다. 모리스는 인류의 특성을 성적인 이유로 설명한다. 왜 인간이란 유인원에게서 털이 없어졌는지, 유독 입술이 도드라지게 발달했는지 등을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로 해명했다. 인간 신체의 진화는 물론 많은 행동 양식조차 결국 성적인 이유에 의해 좌우됐다는 게 모리스 주장의 핵심인 셈이다.

그의 해석을 동양적으로 응용하면 ‘음양의 원리’ 정도가 될 듯싶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의 밑바닥에선 성적 에너지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예컨대 업무적으로도 이성을 상대하게 되면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는 반면, 동성, 특히 같은 또래와 일할 경우 삐거덕거리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이성 간에는 호감이, 동성 사이에는 경쟁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위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동물적 본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이다.

이런 성적 본질을 파헤친 ‘털 없는 원숭이’는 1967년 출판된 당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인간을 그저 하나의 동물로 보고 모든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반감을 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불편해도 진실은 숭고한 법이다. 이 ‘털 없는 원숭이’를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게 바로 이 진실이었다. 실제로 이 책은 2011년 타임지 선정 ‘역대 최고의 논픽션 100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은 오로지 인간의 성적인 부분만 다룬 것은 아니다. “왜 아이들은 친구들과 뛰놀아야 하는가”와 같은 당돌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지극히 논리적으로 설명해준다. 생물학적 지식을 통해서 말이다.

읽다 보면 절망감에 빠질 수도 있다. 인간이 이처럼 하찮은 존재이며 본능에 휩싸인 원시인에서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에 말이다. 실제로 휘황찬란한 문명의 발달은 인류의 성적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저자 모리스는 잘라 말한다.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게 옳다.

요컨대 인생을 지혜롭게 살려면 너무나 중요한 남녀 관계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싫든 좋든, 인류의 절반은 남자, 절반은 여자다. 미국 내 곰 출몰 지역의 학교에서는 곰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가르친다고 한다. 어릴 적 테디 베어 인형의 이미지에 갇힌 나머지 사납기 짝이 없는 곰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은 탓이다. 호불호를 떠나 건강한 청년들이 성에 몰두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필요하다.

성에 대한 담론이 차고 넘치는 현대사회다. 그럼에도 왜 인간이 이토록 성에 탐닉하고 이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짜였는지 등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털 없는 원숭이’는 우리 자신과 이성, 나아가 우리 사회를 올바로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의 일독을 감히 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남정호 정책과학대학원 겸임교수

∥일선 사회부·정치부 기자를 거쳐 국제문제에 천착해온 언론사 경력 30여년의 현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내 언론계에서는 드물게 뉴욕·런던·브뤼셀 세 곳의 특파원을 지낸 국제통으로 국제관계학 박사다. 뉴욕 특파원 시절엔 유엔 본부에서 일하며 ‘유엔기자협회(UNCA)’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반기문의 도전’,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를 썼으며 미술 관련 서적인 ‘나의 사랑 백남준’ 등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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