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지금이 ‘인간 본성’을 얘기할 때인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약 200억을 투자하여 제작된 ‘오징어 게임’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문장이다. 해당 드라마 속 설계자인 ‘일남’과 관리자 ‘프론트맨’은 명백히 인위적인 공간을 만들어 놓고 상금을 건 게임을 참가자들에게 시킨다. 프론트맨은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라고 하는데, 이에 근거하면 해당 게임 속에서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평등한 경쟁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인간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듯 말하기엔 해당 게임은 ‘무결한 평등’과 거리가 멀다. 작 중 줄다리기 팀을 짤 때 완력이 셀 것이라는 이유로 남성 참가자들끼리 팀을 조직하려는 것과 남성 참가자들이 여성 참가자들을 짐짝처럼 여기고 여성 참가자가 스스로를 그렇게 얘기하게끔 만든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엄연히 게임의 설계자이다. 게임 설계자 캐릭터로 대변되는 감독이 주장하는 평등에서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일말의 고려를 배제하고 상대적 약자에 대한 보완 없이 기계적으로 ‘절차적 공정’만을 이야기하는 능력주의와의 차이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이 인간 본성이라며 시청자에게 보여주려 했던 것은 극한 상황 속 인간의 바닥이라기보단 창작자의 바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과 근본적인 비윤리성을 탓하는 것이 스토리상 자기연민이나 신파로 이어지거나 화면상 자극적이고 잔인한 화면으로 이어지는 게 최근 국내외적 흥행을 기록하는 한국 콘텐츠들의 주류 감성으로 보인다. 사회 문제에 대한 창작자의 새로운 접근이나 깊은 통찰 및 분석보다는 잔인한 화면으로 과장한 현실 재현에 그치는 ‘인류애 상실’ 콘텐츠에 막대한 투자금이 모이고 대대적인 PR이 이루어짐으로써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작금의 동향에 아쉬움을 느낀다.

인간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의 책임을 ‘인간 본성’에게 돌려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단순화할 것이 아니라 해결 및 보완 방안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미디어 콘텐츠 창작자 역시 이러한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암울한 현실을 어떻게 더 자극적인 형태로 재현할지 고민하기 이전에 세태에 대한 심도 있고 바른 사유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시대보다도 하나의 영상 창작물이 가지는 영향력과 파급력이 큰 시대에서 우리는 창작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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