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근손실 와서 얼른 헬스장 가야겠어.” 


근손실. 요즘 소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참 많이 쓰이는 새로운 합성어이다. 근손실은 근육과 손실 두 명사의 합성어인데, 운동을 쉬면 근육양이 줄어드니 운동을 꾸준히 해야한다는 불안감, 초조함을 내포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문학을 주전공, 부전공한 나에게는 상당히 그럴싸해 보이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왜 다른 손실은 없고, 근육만 강조되는 것일까? 특히, 시에 대한 신조어는 왜 없는 것일까? 시-손실이라는 합성어는 왜 젊은 이들 사이에서 사용되지 않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조금 서글퍼진다. 그만큼 젊은 이들 사이에서 시(詩)의 위상이 극히 좁다는 뜻일 것이다. 대부분의 젊은 이들은 시를 수능 문학 영역에서 접하지만, 그것이 다다. 생활 전반에서 시를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가슴에 꼭 품은 시, 페이지가 닳도록 읽어서 외운 시, 그런 것들이 없다. 이러한 가슴 아픈 현상의 연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는 젊은 이들이 시에게 마음을 닫아서 그런 것이다. 수능 문학 영역 공부를 하며, 시가 너무 어렵고, 재미 없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게 된 것이 이 현상의 연원인 것이다. 


하지만, 시는 사실 굉장히 열려있는 장르이다. 즉, 그대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한다면, 시는 그대의 품으로 다가와 폭 안길 것이라는 뜻이다. 시를 가슴에 폭 안는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나, 이런 아름다운 일은 그냥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예비를 하고 준비를 해야 시가 가슴에 다가와서 안기는 것이다. 


이 즈음에서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매일 시를 두 편 씩 읽고 노트에 필사를 하는 것이다. 필사 독서법은 이미 항간에 널리 알려진 방법이지만, 내가 이 글에서 필사 독서법을 더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이 정말로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음절 하나 하나를 음미하고, 분석하고, 사유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필사 독서법을 꾸준히 반복을 하다보면, 시를 품에 안는 그 가슴팍이 더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하루에 두 편씩 하면, 한 달에 무려 60편이 되고, 1년에 무려 730편이 되는 것이다. 적지 않은 분량이다. 꾸준히, 성실히 하기만 하면 그대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시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시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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