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 립뷰마스크 배부 사업 실시

틀린그림찾기 활동가 이주명(독문·20)씨,  한은서(디자인·17)씨, 윤수정(사회·18)씨(왼쪽부터)가 14일 립뷰마스크 배부를 진행했다. 한씨는 “립뷰마스크 사용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장애 학생들의 수업권, 생활권이 전반적으로 보장됐으면 한다”며 이화 내 배리어 프리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김나은 사진기자
틀린그림찾기 활동가 이주명(독문·20)씨, 한은서(디자인·17)씨, 윤수정(사회·18)씨(왼쪽부터)가 14일 립뷰마스크 배부를 진행했다. 한씨는 “립뷰마스크 사용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장애 학생들의 수업권, 생활권이 전반적으로 보장됐으면 한다”며 이화 내 배리어 프리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김나은 사진기자

“마스크로 입을 가리면 청각장애인은 언어를 인지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말할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로만 들릴 뿐, 그 소리가 언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죠.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외국어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듣는 것과 비슷한 감각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가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살아가는 요즘. 수어가 아닌 상대방의 입 모양과 표정을 보며 언어를 인식하는 본교 19학번 청각장애인 ㄱ씨는 매 순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은 ㄱ씨는 마스크를 쓴 직원에게 참치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했다. 직원이 주문 메뉴를 되물었으나, 마스크로 인해 직원의 말을 인지하지 못한 ㄱ씨는 그저 맞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ㄱ씨가 한 입 베어 문 샌드위치는 터키 샌드위치였다. ㄱ씨는 “직원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고 부끄러웠다”며 “마스크로 인해 상대방의 말을 잘못 알아 듣고 실수할 때마다 나라는 존재에 환멸을 느끼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ㄱ씨를 비롯한 청각장애인은 단순히 수어나 필담이 아닌, 상대방의 입 모양과 표정을 봐야만 온전히 의사소통할 수 있다. 그런 이들에 게 마스크는 바이러스를 막아주는 보호막임과 동시에 소통의 단절을 불러오는 장벽이다.

본교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는 이같이 마스크로 인해 청각장애인이 겪는 의사 소통 곤란에 주목했다. ‘다름을 틀린 것으로,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우리 사회의 틀린 그림을 찾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틀린그림 찾기는 본교 청각장애 학생들도 겪고 있을 의사소통 곤란의 해결책으로 ‘립뷰마스크’를 떠올렸다.

립뷰마스크 제품 사진. 김나은 사진기자
립뷰마스크 제품 사진. 김나은 사진기자

립뷰마스크는 앞부분이 투명창으로 돼 있어 청각장애인이 상대방의 입 모양과 표정 을 볼 수 있게끔 만들어진 마스크다. 실제로 립뷰마스크는 청각장애인과 대면하는 이들 사이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대구 유일의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영화학교’ 교사들은 수업 시 립뷰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며, 청각장애인 맞춤형 생애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청각장애인생애지원센터’는 2020년 6월 청각장애학생 지도교사용 립뷰마스크 1만6290개를 전국 곳곳의 특수교육 지원센터에 무료로 배부하기도 했다.

틀린그림찾기 활동가 정다은(특교·21)씨는 “청각장애 학생들의 교육권과 기본적 권 리 보장을 위해 립뷰마스크 배부 사업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립뷰마스크 공동 구매를 진행하고자 했으나,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립뷰마스크의 필요성을 알리고 교내에서 사용하게끔 하기 위해 교수를 비롯한 교직원과 교내 노동자에게 무상 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한은서씨가 학내 경비원에게 립뷰마스크를 전달하고 있다. 김나은 사진기자
한은서씨가 학내 경비원에게 립뷰마스크를 전달하고 있다. 김나은 사진기자

틀린그림찾기는 학생회비에서 일정 비율 지원되는 자치단위 예산 중 55만1000원을 립뷰마스크 배부 사업에 사용했으며, 14일부터 11일간 ECC, 중앙도서관, 경비실 등 본교 곳곳을 돌며 약 140개의 립뷰마스크를 배부했다. 배부 첫날인 14일 오후6시 립뷰마스크를 받은 정문 경비 노동자 ㄴ씨는 “학생들이 좋은 일을 해 주니 기분 좋다”며 경비실 창을 활짝 열고 립뷰마스크를 건네받았다.

틀린그림찾기 활동가들은 입을 모아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외쳤다. 백승지(커미·18)씨는 “이번 립뷰마스크 배부 사업으로 청각장애 학생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되고, 많은 사람이 차별적 구조에 대해 인식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이주명(독문·20)씨는 “립뷰마스크가 제도화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측에서 립뷰마스크 배부를 이어나가는 것이 필요하 다”고 말했다.

틀린그림찾기는 남은 학기동안 장애인권 관련 카드 뉴스 제작, 책 세미나 등 배리어 프리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정씨는 “장애 인권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한다”고 전했다.

 

◆자치단위: 학생회비의 일정 비율을 지원받아 학내 인권 감수성과 문화 다양성을 고양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교내 단체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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