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대의 열악한 실기 환경을 살펴보다

6일 오후3시 경 조형예술관 A동 311호 옆에 고장 난 이젤이 놓여있다. 김영원 사진기자
6일 오후3시 경 조형예술관 A동 311호 옆에 고장 난 이젤이 놓여있다. 김영원 사진기자

 

"교수님, 기계가 고장나서 작업을 할 수가 없어요. 언제 사용할 수 있어요?"

조형예술대학(조예대) 학생들의 학습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하나 건너 고장 난 실습 기기들, 학생들의 주 작업 공간이 된 건물 로비와 복도. 코로나19로 학교가 폐쇄된 1년6개월 동안 학생들은 낡고 고장난 기기들이 수리되고, 예술을 구현할 공간이 만들어지는 ‘변화’를 꿈꿨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시원한 해결책도 찾을 수 없었다. 조예대 학생들은 “예술인들은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능력을 요구받고 있는데, 학교의 시설과 교육적 지원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고장난 채로 방치된 기자재들에 학생들 불편 호소

안규미(디자인·18)씨는 잇따른 장비 고장으로 <키네틱오브제> 수업을 제대로 수강할 수 없었다. <키네틱오브제>는 학생들이 직접 오브제를 구상해 모델링하고, 3D프린터를 통해 구상한 오브제를 실제 조형물로 구현해내는 수업이다. 하지만 디자인 트렌드에 발맞추겠다는 거창한 취지와는 달리 수업은 실속 없이 진행됐다. 안씨는 “실습 당일, 예정대로라면 구상한 오브제를 모델링한 뒤 3D프린트까지 마쳤어야 했지만 3D프린터기가 대부분 오랜 기간 관리되지 않아 고장나 있어 실습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수업 진행을 위해 담당 교수가 임시방편으로 수리했지만 3D프린터는 또다시 고장 나기 일쑤였다. 결국 학생들은 실습에 들어가기 전 매번 3D프린터의 상태를 점검한 뒤 수리하고,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에야 사용할 수 있었다. 안씨는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야 겨우 제대로 된 모형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디자인학부에는 3D그래픽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지만 학교의 지원 부족으로 3D소프트웨어를 불법다운로드 하거나 외부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김유민(도예·18)씨를 포함한 도자예술전공(도예) 학생들은 작업을 위한 재료 손질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흙을 주 재료로 사용하는 도예과 학생들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흙을 고르게 만들어 주는 기계인 토련기가 필요하다. 토련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직접 흙을 치대고 반죽해 써야 하는데, 기계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시간과 힘이 많이 소모된다. 교내에 구비된 토련기는 총 3개이나 그 중 2개는 고장난 채 방치돼 있어 현재 1개만 사용 가능하다. 학생들은 1개의 토련기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이화토를 사용해왔는데, 올해부터는 예산 부족으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토련기 하나에 한 가지 흙만 사용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공용 흙이 없어진 현재 토련기는 물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종류의 흙에 한해 사용된다. 김씨를 포함해 물레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은 사용하는 흙의 종류가 달라 토련기를 대신해 손수 흙을 반죽하고 있다. 김씨는 현 상황에 유감을 표하며 “한정된 인원만이 사용하는 물레 수업용 흙보다는 ◆백자토와 같이 모두가 사용하는 흙 종류에 따라 토련기가 사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는 물레 사용에 있어서도 불편함을 표했다. 졸업전시 과목인 <도자와공예> 수업에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레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실기실에서 사용 가능한 물레 15개 중 3개가 고장 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실기실에 사람이 많을 때, 물레가 부족해 예정대로 작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에 김씨는 “물레를 이용한 작업은 며칠씩 걸리기 때문에, 그날 작업하지 못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도예 실습실에 방치돼 있는 고장 난 물레. 스위치가 떨어져 나가 물레를 작동시킬 수 없다. 제공=김유민씨
도예 실습실에 방치돼 있는 고장 난 물레. 스위치가 떨어져 나가 물레를 작동시킬 수 없다. 제공=김유민씨

 

불충분한 작업 환경에 학생들 실기 어려움 이어져 

디자인학부는 과실이 따로 없다. 3, 4학년을 위해 마련해 준 작업 공간은 책상과 단상뿐인 일반 강의실이라 실기실로는 역부족이다. 이마저도 제공받지 못하는 1, 2학년 학생들은 주로 조형관 c동 1층 로비나 빈 강의실에서 과제 작업을 한다. ㄱ(디자인·19)씨는 실기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학교 공간에서는 과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고 느껴, 결국 집에서 과제를 하게 됐다. ㄱ씨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집의 특성상 여러 재료를 늘어놓고 며칠씩 작업하기는 어렵다”며 “결국 하고 싶었던 실물 제작 대신, 표현 범위를 디지털 상으로 좁힐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원하는 작업 방식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실기실이 있는 도자예술전공 학생들 역시 비좁은 공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씨가 사용 중인 4학년 실기실은 정원 28명 규모의 공간이다. 하지만 과 특성상 기물이 크고, 개수가 많은 데다가 작업을 위한 재료와 짐까지 실기실에 보관해야 하다 보니 좁게 느껴진다. 김씨는 “작년에 동기가 작업을 정리하고 나가던 도중 다른 동기의 작업물을 실수로 건드려 깨뜨린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기실 문제에 대해 조예대학생회(JoYous) 대표 유지현(동양화·19)씨는 “조예대 행정실에 문의하니 본부 측 재정지원을 받아야만 해결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며 “작년에 진행된 총장과의 간담회에서도 어려움을 토로했으나 답변이 흐지부지돼 뚜렷한 대안을 얻을 수 없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기자재와 실기실 문제로 인한 학생들의 불편은 수년간 이어져 왔다. 본지 1548호(2017년 11월13일자)에 따르면 조형관 B동 404호 복도에 구비된 재봉틀은 모두 특정 부품이 없거나 고장나 학생들은 과제를 할 때마다 후문 근처 생활환경관까지 가야 했으며, 디자인학부 학생들은 과방이 없어 빈 공간을 찾아다니며 작업했다.

시설 문제가 제기된 이후 본지 1567호(2018년 10월8일자)에 따르면 조예대 강애란 전 학장은 건물 내부의 파손된 시설물 교체, 공간 보수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그는 "각 실기실에서는 실기실 담당 전문 기술자가 학생 작품 제작 및 기계 사용을 지원할 예정"이라며 "비용적인 문제나 고도 제한 문제가 아니라면 사실 증축 및 신축도 하고 싶다"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학생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그치지 않고 있다. 

조예대 학생들은 여전히 입을 모아 전공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안씨는 “비대면 수업이 진행돼 학교가 폐쇄된 동안 각종 기자재들은 오랫동안 방치돼 학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며 “교내 시설의 미흡한 관리로 인해 수업의 질이 떨어지고 학생들이 수학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예대 행정실은 “조예대 교수들이 관련 사항을 논의 중에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화토: 이것저것 마구 섞여 잡스러운 흙으로, 도자 작업을 위해 본교에서 조예대 학생들에게 제공하던 잡토를 일컫는 말.

◆백자토: 백자를 만드는데 이용되는 하얀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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