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처음 가본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며 서로에게 묻는다. 

“뭐 먹고 싶어? 뭐 먹을까?”

한 가지를 주력해서 파는 가게는 매우 드물고, 여기에 더해 다소 독특한 이름을 가진 메뉴들로 메뉴판이 채워져 있다면, 음식 소개와 재료 설명을 읽어보기 바쁘다.

SNS로 사전에 후기를 찾아온 친구가 있다면, “여기 이게 맛있대!”라며 비교적 빠른 주문이 이루어질 것이다. (애초에 후기가 매력적이지 않다면 가지 않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러나 후기를 봐도 잘 모르겠거나 여러 개를 주문해야 하는 경우, 테이블 위 고민하는 시간은 길어져 슬슬 눈치가 보인다. 그럴 때 나는 “그럼 가장 먹고 싶지 않은 것을 골라봐.”라며 가지치기 방식을 제안하지만, 이것 또한 통하지 않을 땐 어쩔 수 없이 “저기요~”라고 사장님을 부르는 수밖에. “어떤 게 제일 맛있나요?”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주문하나요?”

하지만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맛있어 보이는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예상과 달리 맛이 없다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비싼 돈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입가심할 디저트를 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흔히 다양한 선택지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앞에 놓인 여러 선택지 중 각자 희망과 선호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자유. 그런데 우리는 선택에 있어 정말 자유로울까? 질문에 앞서 선택에 있어서 돈, 시간, 감정 등과 같은 한정된 자원 분배에 대한 고려가 불가피하니 애당초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메뉴 선택에 있어 고민되는 가장 큰 이유는 선택지가 별로 없어서 혹은 먹고 싶은 게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가능성 중 자신에게 합리적이고 만족스러운 것을 선택하기 위해 심사숙고한다. 그리고 이는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이기에 그것의 결과 역시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에 무의식적인 부담을 느끼고, 주변의 후기나 신뢰할만한 조언 등을 얻음으로써 이를 덜고 싶어 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꽤나 합리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결과가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아! 내 입맛에는 별로인가 보다. 이곳이 정말 맛집이 아니거나, 거짓된 후기였거나 혹은 그날따라 주방장이 음식 간을 잘못했다 등의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메뉴 선택보다 더 오랜 시간, 생이 끝날 때까지도 자신이 어떤 일을 하며 살지 고민한다. 이는 무엇과도 비교도 안 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기에 졸업을 앞둔 학생들과 사회초년생들은 진로 고민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어요.’와 같은 명제 역시 개인에게 많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고 있다. 이 명제가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면, 이는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주변에서 자신이 정작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그들의 속사정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실패 그 자체보다 개인에게 드리워지는 책임으로 선뜻 선택하기를 유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한 가지 기억하자, 이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은 없으며, 그것의 결과의 책임이 자신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