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는 뺏어갈 수 없는 것들을 주기도 했다. 내게는 안 쓰면 안 벌어도 된다는 마음가짐이 코로나의 선물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적었다. 대신 1학년 때는 지나칠 법한 고민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부터 시작해 “내가 과연 밥벌이는 하고 살 수 있을까?” 하는 비극적인 생각까지 했다. 더군다나 호크마였기에 전공 선택이 큰 스트레스였다. 대다수가 선택하는 안정된 컴공, 경영을 가는 것이 지당한 선택이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학과들과 나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아이디 비번만 몇 번 틀려도 컴퓨터를 곧장 손도끼로 부수고 싶고 재무회계와 같이 숫자를 다루는 것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다. 웬만하면 숫자는 오늘의 날씨 체크와 책 쪽수 확인용 정도로만 평생 접하고 싶은 인간이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보며 밥을 축내는 나보다 훨씬 멋있고 책임감 있는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근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친구들을 2달 후쯤 보면 하나같이 다 지쳐있었다. 버블티를 파는 친구는 수많은 음료 레시피와 현란한 주문 파티로 인해 손목을 잃었고 무례한 손님들로 인해 인류애도 잃었다. 빵집에서 일하는 친구는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여름 내내 오븐에 빵과 같이 구워졌다고 한다. 이렇게 지친 친구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열심히 이것저것 보상심리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우두커니 관전하며 진로 고민을 하다가 열심히 사는 친구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노동을 하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물건을 소비할 필요가 있는가? 이로 인해 남는 것은 상처받은 마음과 너덜너덜해진 육체 그리고 보상심리로 구매한 물건뿐 아닐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물건을 소비하지 않으면 일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닐까? 이런 내 생각은 욕심은 줄이고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며 만족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삶과 맞닿아있었다. 이후 미니멀리즘에 관한 다큐멘터리, 서적 등을 참고하여 나만의 변화를 이끌어나가고자 했다. 우선 방안의 가구를 침대, 서랍장, 옷장 빼고는 모두 버렸다. 화장대, 책장 등을 빼니 방이 넓어져 속이 후련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집을 잃은 물건들이었다. 웬만한 물건은 옷장에 다 감당하기로 했다. 물건들의 대 행군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는 이탈자들도 속출했다. 객관적으로 손이 안 가는 물건 중 다른 친구들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옷과 화장품들은 나눠주고 상품 가치가 있는 물건들은 벼룩에 팔고 무료 나눔도 했다. 결국, 나에게는 물건이 1/3도 남지 않게 됐다.

 신기하게도 비우면 비울수록 더 비우고 싶어졌다. 어느 정도만 정리하자던 짐은 여행용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가게 정리하고 싶어졌다. 요즘은 여행용 가방에 들어갈 짐도 줄이고 싶다. 훗날 나의 모든 짐이 배낭 안에 들어가도록 줄여 세계 어디로 떠나든 배낭 하나면 어디든 내 집이 된다는 생각으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비우면 비울수록 초라해지고 불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진 것에 너무나 만족하다 보니 자족스럽다라는 단어로밖에 요즘 나의 상태는 설명이 안 된다. 또한, 돈을 벌지 않고 안 쓸 생각을 해버리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나의 새내기 생활 난봉꾼 코로나는 마냥 밉지만은 않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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