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초등 독서록 쓰기의 기적’ 저자

 

이새롬(특교·05년졸) 서울강신초 교사
이새롬(특교·05년졸) 서울강신초 교사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 일한다. 작든 크든 내가 하는 일은 예고 없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내 생각과 감정을 통째로 뒤흔든다. 책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에서 아흔 살이 넘은 피아니스트는 이렇게 고백한다. “삶의 다른 일들이 내가 연습하면서 겪는 일에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그랬어요.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기분이 언짢고 죄책감이 들고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죠. 그래서 피아노 연습과 삶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내가 하는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 역시 그랬다. 수업이 잘 되고,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을 때는 삶에 여유와 감사가 넘쳤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짜증과 화가 났다. 거꾸로 내 눈앞에 해결할 문제가 많아, 삶이 버거울 때는 한껏 예민해져서 아이들과의 하루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는 17년 차 초등교사로 매일 아이들을 만난다. 출근해도, 퇴근해도 사람을 만나는 게 내 삶이다. 교사가 된 후 의욕에 불타 각종 교사 연수, 선배 교사에게 배운 활동들을 교실에 적용했지만, 난 번번이 실패했다.

2013년, 6학년 담임을 맡을 때였다. 졸업 전 아이들에게 독서 습관만큼은 꼭 알려주자고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를 위해 ‘일주일에 독서록 1편’ 숙제를 내겠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의 원성이 터져 나왔다. 결국 그 원성을 잠재우겠다고, 난 “그럼 나도 쓸게”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9년째 손글씨 독서록을 지도하고 있다. 사실 책을 읽게끔 하려고 ‘독서록’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거였다. 대단한 계획도 없었고, 그저 아이들이 독서의 재미를 알고 중학교에 입학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독서록,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의 기록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인 나도 성장했다

부끄럽지만 난 일 년에 3~5권 책을 읽는 평범한 어른, 아니 성인 연간 평균 독서량(7.5권, 문화체육관광부 ‘2019 국민독서 실태조사’)에도 못 미치는 어른이었다. 첫해는 독서록이 고통스러운 숙제였다. 내가 독서록을 써보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됐다. 일주일이 이렇게 빨랐는지, 아이들 공책에 이렇게 줄이 많았는지, 내가 글쓰기에 얼마나 소질이 없는지를 탓하며 쓸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해 여름방학이 지나자 독서록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독서록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책을 더 깊이, 제대로 읽게 된 것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책 속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갈 때도 ‘이번에는 어떤 책을 읽고, 독서록을 써볼까?’ 하고 고민했다. 내 어깨를 짓누르던 고통은 작은 즐거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독서록 덕분에 나도,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책을 읽으면서 교실 모습도 달라졌다. 사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자주 뒤통수를 맞는다. 수업 시간에 다 안다고 해놓고서, 시험 보면 다 틀려서 교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그 뒤통수 말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짜 아는 건 다른데,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들었으니 아이들은 다 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독서록을 쓰면서 뒤통수 맞을 일이 줄었다. 책 200~300쪽을 독서록 몇 줄에 요약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스스로 이해한 것을 자꾸 꺼내어 보게 된 것이다. 이런 연습들은 학업 성취도는 물론이고, 독해력 향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 가장 기분 좋은 변화는 아이들의 자아존중감이었다. 독서록을 쓰면서는 아이들이 긴 글을 읽거나 모르는 낱말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이 쓴 손글씨 독서록이 쌓이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가 생기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줄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독서록을 써보니 독서록은 그냥 기록이 아니었다. 책을 다 읽었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과 승리의 기록이었다. 작은 성공을 거듭하면서 힘든 일이라도 “제가 해볼게요” 하는 아이들 또한 늘었다.

건강한 자아존중감 형성이 아이들에게 생긴 기적이라면, 교사인 내게 생긴 기적은 마음의 평화와 일상의 기쁨이었다. 교사인 내가 나서서 아이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엉겁결에 시작한 독서록 덕분에 한결 가벼워진 것이다. 같은 나이지만 성격, 생각, 경험이 다 다른 아이들이 모여 있는 교실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긴다. 같이 책을 읽고, 책 수다를 떨고, 독서록을 쓴 책들이 한 권, 두 권 늘면서 갈등 해결이 한결 쉬워졌다. 나는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고, 살짝 힌트만 주면 됐다. “‘곰씨의 의자’에 나오는 곰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떠올려 주시겠어요?”

때로는 아이들끼리 책 이야기로 문제를 풀기도 한다. “있잖아. ‘무지개 물고기’에서 무지개 물고기가 반짝이는 비늘을 다른 물고기들에게 나누어 주잖아. 00이가 속상해하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블록 몇 개 그냥 나눠주는 거 어때? 힘들까?”

일터인 학교에서 일어난 변화는 자연스럽게 내 삶으로 이어졌다. 독서록을 쓰면서 난 잊고 있던 독서의 재미를 되찾았다. 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아 북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북클럽에서 나누는 책 수다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됐고, 그 기쁨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활기차게 만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만약 내가 초등교사가 아니었다면, 독서록을 쓰며 책을 열심히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 그동안 써온 독서록을 통해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성장했다. 어쩌면 나는 읽어야 사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잠을 자는 일상처럼,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독서록을 썼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독서록을 쓰는 게 모두의 습관이 된다면, 일과 삶, 공부와 삶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리라 믿는다.

이새롬(특교·05년졸) 서울강신초 교사

#본교 특수교육과로 입학해 초등교육을 복수전공하고 2005년 졸업했다. 17년째 초등교사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에서 조기 영어교육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고, 교육실습생 지도교사로도 활동했다. 2013년부터 학생들과 함께 독서록을 써 오며 최근 ‘하루 10분 초등 독서록 쓰기의 기적’(마더북스)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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