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인터넷 뉴스를 보는데, 항상 기사를 읽고 나서 댓글을 본다. 어느 날은 나의 이런 자연스러운 행위에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과연 어떤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가? ‘너무나도 많은 혼란스러운 정보 속에서 판단을 유보하고 그저 마음 편히 댓글에 의존하여 내 생각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우리가 판단을 왜 유보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 너무도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너무도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린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인식은 종종 우리가 결정을 미루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된다. 즉, 복잡한 현재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춘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적당히 똑똑한 척을 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관심을 먼 과거로 돌렸다. 역사를 공부하며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회피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아도 좋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한 학기 동안 선교 장학생으로 활동하며 나는 그 착각에서 조금이나마 깨어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선교 활동조차도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가장 먼저 오지로 뛰어가는 역할을 해오던 선교사들은 줌(ZOOM)의 접속 버튼을 눌러 그곳을 선교의 장으로 삼아야 했다. 쉽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우리는 평화의 목소리가 절실한 곳을 찾았다. 바로 민주화 운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 미얀마였다. 걸출한 여성 민주화 활동가 7분을 한자리에 모시고 현장의 이야기와 세계를 향한 외침을 듣는 간담회를 성공리에 개최할 수 있었다.

선교 장학 활동을 하면서 사실상 선교된 것은 나였다. 판단을 유보하던 나에게 현실을 보는 눈과 명확한 나만의 기준점이 생긴 것이다. 미얀마의 현실을 직접 들어볼수록 이는 더욱 명확해졌다. 우리가 기준점으로 삼아야 할 질문은 바로 ‘어디에서 어떻게 인권이 탄압되고 있고, 이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어떤 정치적 세력이 권력을 쥐든, 인류가 끝나는 날까지 변하지 않을 가치이자 행복의 기준은 바로 인권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미얀마, 더 먼 지구 반대편의 일들까지도 우리는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달리 말해 이것은 세상의 모든 일에 우리가 모두 조금씩 책임을 나누어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일 것이다. 이제는 나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차례이다.

손지현(기독·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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