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ㅣ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운 학교생활 속에서도 배움의 열정을 꽃피운 졸업생 세 명의 이야기를 전한다. 최고령 졸업생 전정자(체육·65)씨, 최연소 졸업생 권나경(초교·18)씨, 2개의 복수전공과 교직 이수를 마친 김여명(철학·16)씨를 인터뷰했다.

 

최고령 졸업생 전정자씨,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한계를 뛰어넘다

  1965년에 본교에 입학한 전정자씨. 이주연 사진기자
  1965년에 본교에 입학한 전정자씨. 이주연 사진기자

최고령 졸업생 전정자씨는 65학번 대선배이지만 75세의 나이로 체육과학부를 졸업한다. 지금에서야 졸업하는 연유를 물으니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할머니와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며 “(당시) 학칙상 결혼하면 학교에 못 다니게 했다”고 답했다. 그는 당시 결혼을 선택하면서 본교에서 퇴학당했고 이후 2019학년도 1학기에 재입학했다.

전씨는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시작해 서울예고에서 발레를 전공했지만 잦은 부상과 불리한 신체적 조건 때문에 무용에 점차 싫증을 느꼈다”며 “체육에 흥미가 있어 본교 체육대학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결혼과 동시에 학교를 그만두게 됐고, 그 후 가정생활과 육아에 전념했다. 자녀가 독립할 때쯤 돼서야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애들 결혼시키고 나서야 배우고 싶었던 운동을 시작했다”며 “수영, 탁구, 배드민턴, 요가, 헬스 등 여러 가지 운동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헬스클럽 강사로도 활동했고, 수영 마스터 대회 40~50대 부에서 자유형, 평형 우승도 했다”고 전했다. 지금도 전씨는 생활체육시설과 등산을 통해 꾸준히 운동하고 있다. 전씨에게 이러한 운동 경력이 재입학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체육은 삶에 정말 유익합니다. 권태로운 삶에 활력을 주기도 하고 늙은 나이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나이가 꽤 있었지만 재입학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건강 악화였다. 그는 “4년 전 위암 수술을 2번 받으면서 몸무게가 15kg가 빠졌다”며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전씨의 남편은 그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이겨 내기를 바랐기에 재입학을 먼저 권유했다. 전씨는 “항상 배움의 열정이 가득했고, 마음 한 켠에는 졸업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재입학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강 신청부터 과제 제출까지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그에게는 컴퓨터가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이었다. 그는 “수강 신청 방법도 잘 모르고 정보도 구하지 못해서 많이 고생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결국 한 번은 수강 신청이 잘못돼서 한 학기를 또 다녀야 했고, 수강 신청에 실패해 다른 전공 과목의 강의 5개를 듣게 되기도 했다. 그는 “수강 신청 실패로 노인체육과 운동 역학 관련 수업을 듣게 됐는데, 지나고 보니 그 과목들이 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며 “오히려 더 다양한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그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과제 방식도 이해하기 어렵고 과제 제출도 쉽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학교 생활은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지만 유익한 강의와 배움의 희열 덕분에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에서 터득한 것을 노후생활에 적용하며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강의로 원형중 교수(체육과학)의 <스포츠언론및보도영상>을 꼽으며 “수업에서 기자처럼 읽는 법을 배운 뒤로 꾸준히 성경을 같은 방식으로 읽고 녹음한다”고 말했다. 또, “내가 열심히 수업에 임하니, (원 교수가) 학생들에게 대선배님을 따라 열심히 해보자고 말해 용기를 얻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대학 생활 중 힘들었던 순간을 회고하며 “나이를 먹으니 생각과 의욕은 앞서는데 머리가 안 따라간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러한 두려움에 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힘든 과정 속에도 그는 “시간을 투자해서 대학 생활을 하고 젊은이들과 같이 호흡하는 경험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이기 때문에 더 값지다”고 졸업 소감을 말했다.

전씨는 여전히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는 “건강이 있는 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며 졸업 후에도 배움을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시니어를 위한 체육활동 봉사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연소 졸업생 권나경씨, 큰 꿈을 향해 일찍 첫 발을 내딛다

                                              최연소 졸업생 권나경씨. 제공=권나경씨
최연소 졸업생 권나경씨. 제공=권나경씨

최연소 졸업생 권나경(초교·18)씨는 만 21세의 나이로 초등교육과를 졸업한다. 중학교 때 홈스쿨링으로 공부해 검정고시를 치렀고 같은 나이의 친구들보다 1년 일찍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도 1년 일찍 졸업해 본교에 18학번으로 입학했다. 이후 휴학 없이 7학기를 이수해 조기 졸업하며 2020학년도 후기 졸업생 중 최연소 타이틀을 달게 됐다.

그는 처음부터 조기졸업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초등교사라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 임용고시 준비를 계획했고 한 학기에 보통 20~21학점, 최대 24학점까지 듣다 보니 조기졸업 요건을 충족시켰다. 한 학기에 많은 수업을 들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질문에 권씨는 “3학년 2학기 때는 전공을 6과목을 수강해 힘들었다”며 어려움을 표했다. “매일 밤 12시까지 과제를 제출하고 새벽 3~4시까지 조별 과제를 했다”며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한 학기라고 전했다.

본교에 입학해 동기와 1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서 어색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동기들과 친하지 않아서 빠른이라 소개하기도 했었지만 친해진 후에는 중학교를 1년 일찍 졸업했다고 말했다”라며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니라 동기와 마주칠 기회가 많이 없어서 1학년 때 어색했다”고 답했다.

그는 과방을 졸업 후에 가장 기억에 남을 공간으로 꼽기도 했다. “2, 3학년 때 팀플이 많아 학우와 함께 밤늦게까지 과제하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며 고군분투한 기억을 떠올렸다. 또한 “수업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과방을 교실처럼 꾸미고 화이트보드를 사용해 열심히 과제 영상을 찍었던 기억도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답했다.

대학 생활과 졸업을 일찍 경험한 장단점에 대해 “나에게 1년의 시간이 더 있다고 생각해 임용고시를 볼 때 부담과 나이의 압박이 덜하다”고 답했다. 이어서 “단점은 대학교 1학년 때 성인이 아니어서 마음껏 놀지 못했던 것 같다”며 “건전하게 (동기들과) 보드게임을 하며 놀았다”며 웃었다.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실감이 안 나지만 조금 설레기도 한다”며 “이제는 학생 신분이 아닌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졸업 소감을 말했다. “초등교사, 더 나아가 교장, 장학사 등 교사들을 지원하는 교구나 제도를 고안해 교육의 변화를 만드는 교육자가 되고 싶어요.”

 

3전공 3교직 졸업생 김여명씨, 학문의 즐거움에 빠지다

김여명씨 증명사진. 제공=김여명씨
김여명씨 증명사진. 제공=김여명씨

김여명(철학·16)씨는 철학과 심리학, 도덕윤리교육(연계) 총 3가지 학문을 전공하고 각 전공 교직을 이수해 철학 교사, 도덕윤리 교사, 전문상담교사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김씨는 처음부터 3전공에 3교직을 할 계획은 아니었다. 인간의 사유와 마음에 대해 관심이 많아 철학을 전공하던 중 인간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어 심리학을 복수전공했다. 그는 교직 이수에 관해서는 큰 뜻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투철한 직업의식이 있었다기보다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제외하다 보니 선택하게 됐다”며 “당시 일반 사기업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대학원에 가기에는 공부할 자신이 없어 교직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의 관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인권 변호사를 꿈꾸던 그는 법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고, 철학과 법학이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매력을 느꼈다. 또한 지금까지 배운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에 로스쿨 입시를 택했다.    

김씨는 자신의 꿈을 위한 중요한 자질로 균형 감각을 뽑았다. 그는 “혼자서 책만 보며 공부하다 보면 일반 시민들의 법 감정, 일반적인 법률 감각에 어긋나는 사유를 하거나 판결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그렇다고 정의를 추구하는 법률가가 대중들의 목소리와 외압에 따른 결정을 내려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공하던 분야와 연관 지어 다른 학문을 깊이 배워보고 싶다면  복수전공을 해보라고 적극 추천했다. “분명 다중전공은 시야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본 전공에 대한 깊은 이해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 전공들은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고 준비하는 것에, 또 사회생활하는 데 있어서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김씨는 철학, 심리학, 교육학을 배우며 사람을 이해하고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식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철학적 관점으로 삶과 사람을 이해하는 데 한계에 부딪힐 때, 심리학적 사고를 통해 해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교육학은 이와 같은 배움을 바탕으로 사람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교육할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그에게 교육학은 학문과 세상을 잇는 통로의 역할을 해 준 학문이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김씨에게도 다중 전공 및 다중 교직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다양한 전공과 교직 생활을 해내는 것 외에도, 여러 대외 활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는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기에 11학기의 학교생활이 가능했다.

김씨에게 이화는 그를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보듬어주고 채찍질해 준 곳이다. “5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학교생활을 했기에 뿌듯하고, 앞으로 법률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더 배우고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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