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에서 소위 '대2병'에 걸린 친구들이 많이 보인다. '대2병'이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인생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허무함을 느끼는 증상을 일컫는다. 나 또한 '대2병' 증상을 겪곤 했다. 내가 택한 전공이 나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재능이 넘쳐나는 사람들 속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대2병'은 고등학생 때 가지고 있던 환상이 깨지면서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입시가 끝난 성인의 삶에 대해 과도한 환상을 심어준다. 마치 대학에만 붙으면 인생의 모든 역경이 끝나는 것처럼. 사실 그건 고작 예고편에 불과한데 말이다.

당신이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치렀다면, 그 기간에 개인이 얼마나 좁은 사회 안에서 생활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해가 지면 야간자율학습을 하거나 독서실로 자리를 옮겨 공부한다. 하루의 반 이상을 책상 앞에서 보내는 것쯤은 예삿일이다. 그저 대학에 붙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디데이를 세며 하루하루를 공부에 헌신한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일단 대학에나 붙고 나중에 생각하자, 하고 자신을 달래며 고단했던 입시 생활을 견뎠고 결과적으로는 이화에 입학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장이 주어진 것 말고는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당히 신분증을 제시하며 술을 살 수 있게 됐다는 것과 더는 야간자율학습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정도. 2019년 12월31일에서 2020년 1월1일로 넘어가는 순간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게 전부, 나는 그대로 나일 뿐이었다. 심지어 코로나의 영향으로 수업이 모두 비대면으로 전환되자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새로이 얻어지는 관계도 없었다. 성인이 된 직후의 새로움에 설레는 것도 잠깐, 나는 줄곧 불안에 잠겼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며 나아가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우물 안에 갇혀있던 개구리가 세상 밖으로 나와 마주한 것은 탄탄히 다져진 길이 아니라 끝없는 바다였던 것이다. 이 와중에 저 옆에서 누구는 배를 만들고 누구는 뗏목을 만들어 바다를 막 건너가고 있는데 나는 혼자 멍하니 모래사장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비단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바다에 겁먹고 있을 것이다. 전에는 아무리 높아도 어쨌든 꼭대기가 보이는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성공이었는데, 이제는 끝도 안 보이는 바다를 마주했으니까. 어떤 것이 성공인지에 대한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으니 막막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진 바다에 익숙해져야 한다. 바다를 건너 육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누군가는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저 평생을 헤엄치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행보를 과하게 의식하며 숨 가쁘게 그들을 쫒아가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하는 삶을 살자. 방향성에 대한 질문은 스스로 끊임없이 던지되, 정해진 답은 없으니 정답을 찾을 생각은 하지 말고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데 집중하자. 발을 내딛다 실패해서 물속에 잠겨버려도 괜찮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숨이 끊어질 것 같더라도 그 속에서 살다 보면 아가미가 생길지 누가 아는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막막함은 누구나 겪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다'라는 말은 힘든 상황에서 남에게 들으면 잔인한 말이지만, 스스로 되뇌일 때는 그 어떤 말보다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너무나도 높은 곳에 있어 나와는 마냥 멀어 보이는 사람들도 다 이 시기를 거쳤을 거라는 믿음은, 반대로 지금의 나도 빛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겁먹지 말자. 겁먹지 말고 우리 앞에 펼쳐진 바다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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