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해보자. 바로 기억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어제의 저녁 메뉴가 바로 생각난다면, 그저께, 그그저께의 메뉴도 한번 떠올려보자. 아마 대부분은 바로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면 정말로 궁금해져서 갤러리나 배달의민족 주문기록에 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사람들이 찾는 게 바로 ‘기록’이다. 개인적으로, 기록은 사람만의 귀여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일상을 기억하기 위해서 열심히 흔적을 남기는 것도 그렇고, 일기든 사진이든 블로그든 형식에 따라서 개인만의 특성까지 반영되어 있는 점이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진다.

내 경우에는 성실한 성격이 아니라서 매일매일 쓰는 일기는 무리였기에 사진으로 하루하루를 기록하곤 했다. 뭘 먹든, 어딜 가든, 무슨 대화를 하든 짤막한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내 일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갤러리를 들어가면 몇몇 다른 날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밖에 나갈 일도 없고, 아무 의미 없이 보내는 하루가 많아지니 기록할 것도 사라지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갤러리와 기록을 찾아보았을 때 아무것도 없는 날이 많아질수록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관측해야만 비로소 실체가 존재하는 고양이가 된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고, 문득 옛 생각이 날 때 갤러리에 들어가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같이 추억팔이하던 것도 하나의 재미였는데, 이제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도 서로가 이렇다 할 새로운 일이 흔치 않기에 요즘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하며 한탄 섞인 웃음을 나누는 게 주가 된 것 같다. 너무 일상 속 우울에 젖은 글 같아도 은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액션 판타지 애니메이션 속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라는 대사가 괜히 사람들 사이에서 명대사로 통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와 내 친구들이 이런 넋두리를 하고 있을 때 간혹 가족이나 다른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지나가는 하루를 충분히 즐기고 미련 없이 보내는 것 같아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물론 이런 기록하는 습관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하루를 아끼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록하는 습관이 나의 일상의 사소한 부분까지 품는 ‘애정의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팬들이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나에게도 덕질아닌 덕질을 한다면 스스로에게 더 많은 애정이 생기고 과거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이런 습관이 없던 사람들에게 기록의 습관을 추천하고 싶었고, 이미 비슷한 습관을 가진 사람과는 요즘의 넋두리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니 더더욱, 언젠가 카톡을 들어갔을 때 밖의 공기 냄새가 바뀌어서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을 친구들과 얘기한 기록을 본다거나, 갤러리에 들어갔을 때 산책하다가 정말 귀여운 강아지를 만난 추억의 기록을 보게 되는, 다시 용량이 꽉 찬 그런 일상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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