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욱환 교육학과 명예교수
오욱환 교육학과 명예교수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취학률은 급속도로 상승하여 2020년에는 70%를 넘어섰다. 한편, 대학 졸업 학력이 요구되는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 가운데 최대 30%를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 가운데 절반도 학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졸 청년의 실업과 하향 취업의 일상화는 이 계산이 맞음을 섬뜩할 정도로 정확하게 실증하고 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청소년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의심 없이 기대한다. 그러나 대졸 인력을 구하는 고용주는 절대로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대졸 청년의 취업 열망에 부응하려고 필요 없는 인력을 채용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노동시장이 얼마나 냉정한지 알고 싶으면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떡볶이 수가 하나 적었을 때 자신이 취했던 행동을 되짚어 보면 된다. 다시는 그 가게에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가게의 실상을 알린다.

나는 대졸 청년 일자리가 얼마나 각박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비행기 탑승으로 비유한다. 300명 정원의 비행기는 600명이 몰려오더라도 300명만 태운다. 서서 가도 좋으니 태워달라고 해도 태워줄 수 없다. 비행기가 뜰 수 없기 때문이다. 공항까지 갔다가 비행기를 타지 못한 상황이 얼마나 황당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은 이처럼 난감한 사태를 예감하고 있다. 입학한 후 1년만 지나면 사태의 심각함을 감지하게 된다. 절박한 사태가 다가오기에 한국 대학생들은 “시들어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자아를 상실하고 존재감을 잃고 있다면 이렇게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은 정신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높은 취업 문턱에 깊어지는 자아 상실감

나를 살리려면 책을 읽고 글을 쓰자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읽기에는 건지듯 읽기, 흘려 읽기, 따져 읽기, 곱씹어 읽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을 때는 흘려 읽어도 괜찮다. 그러나 교과서, 전공 도서, 학술서는 따지듯 읽어야 한다. 자신의 글쓰기에 참조하기 위해서 읽을 때는 곱씹어 가며 읽어야 한다. 대학생이라면 따져 읽기와 곱씹어 읽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수강을 신청한 과목의 교과서를 흘려 읽은 후 시험을 해치우려는 당돌한 학생이 적지 않다.

책은 손이 쉽게 가는 곳에 있어야 한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책은 서점에 있는 책과 다르지 않다. 책갈피가 끼워져 부엌 선반 위에 놓여 있는 어머니의 책은 화려한 유리 책장 속에 진열된 아버지의 장서보다 훨씬 가치 있다. 나는 중고서적으로 되팔기 위해서 책을 모시듯 대하는 학생을 많이 보았다. 책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문헌을 보관하고 대출하는 도서관 사서가 아니다. 고전을 읽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독서를 싫어하게 되는 첩경이다. 고전은 자신은 읽지 않고 남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일 가능성이 크다. 처음부터 좋은 책을 고르지 마라. 재미있는 책부터 시작해서 많이 읽다 보면 좋은 책을 읽게 된다. 스스로 선택해서 많이 읽는 것이 추천을 받아 조금 읽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나는 재직할 때 내가 쓴 책의 복사본과 책값의 반을 주고 산 커피를 책상 위에 놓고 내 수업을 당당히 듣는 학생을 몇 명 보았다. 나는 민망해서 복사·제본한 책과 학생을 외면하였다. 학기 말 시험을 마친 후 교과서와 참고 도서를, 전역하는 군인이 총기를 박대하듯, 폐기 처분할 듯한 학생도 적잖게 보았다.

나는 교육학에 몰입해 있으므로 어머니의 교육 효과를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 어머니의 자녀교육으로 특강도 몇 번 했다. 나는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에게 자녀가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주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어머니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아이라면 어머니가 책을 또박또박 읽어줄 때 상당히 집중해서 듣는다. 아이는 어머니를 눈앞에 두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한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눈앞에서 책을 펼치고 소리 내어 읽어주면 눈은 또록또록, 귀는 쫑긋쫑긋하며 듣는다. 어머니는 어린 자녀를 마주 보며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성우나 배우처럼 연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중에는 책에 없는 내용을 첨가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있음도 확인하게 된다. 어머니의 애정이 듬뿍 담긴 정감 어린 육성을 들으면서 자란 아이는 어머니와의 교감으로 행복을 느낀다.

책을 읽자. 나를 살리기 위해서 책을 읽자. 많이 읽으면 글을 쓸 수도 있다. 글쓰기는 창작이므로 글을 쓰면 자아를 완전히 찾을 수 있다.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는 글(‘안네 프랑크의 일기’)을 씀으로써 독일군 점령 아래에서도 살 수 있었으며 지금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다. “스무 살까지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고백한 미국 빈민가의 흑인 청소년은 안네의 일기를 읽고 자신도 일기를 씀으로써 절망을 극복했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에 그런 실화가 담겨 있다.

오욱환 교육학과 명예교수

∥ 1984년부터 본교 교육학과 교수로 약 30년간 재직하고 2013년 8월 퇴임했다. 교육사회학, 비교교육학, 여성교육학 등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맡았으며 교육학 하위 영역들의 접목과 교육 현상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위해 노력했다. 2004년 강의우수교수로 선정됐고 같은 해 한국교육학회 학술상, 2010년 이화학술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대학 교육 필수화와 보편화의 함정’(2019), ‘한국 교육의 전환: 드라마에서 딜레마로’(2014), ‘사회자본의 교육적 해석과 활용’(2013), ‘베버 패러다임 교육사회학의 구상’(2010), ‘조기유학, 유토피아를 향한 출국’(2008), ‘교사 전문성’(2005), ‘교육사회학의 이해와 탐구’(2003), ‘한국사회의 교육열: 기원과 심화’(2000) 등이 있다. 개인 홈페이지(http://home.ewha.ac.kr/~oookwhan/)에 칼럼, 논문, 저서, 수업계획안이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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