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윤(정외·06년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비서실장/ 前 (사)제주다크투어 대표
백가윤(정외·06년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비서실장/ 前 (사)제주다크투어 대표

한국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며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의 역사를 경험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일본군 성노예와 강제동원 문제, 제주4·3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군부독재 시기의 인권침해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기본권을 침해했다. 평범한 시민들이 간첩으로 조작되기도 했고 군에서의 의문사를 비롯해 인권옹호자들의 죽음도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러한 국가폭력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과거청산의 새로운 장을 열어왔다. 진실을 찾고자 하는 피해생존자와 유족들의 열망으로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됐고, 이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제정에 따라 2005년~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활동했다. 8000여 건에 달하는 다양한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한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포괄적 과거청산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었지만 부족한 조사 기간 등의 한계를 남긴 채 2010년, 활동을 종료했다.

이후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 시설에서의 인권침해와 같이 1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인권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두됐고 이러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10년 만에 재출범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2020년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5월 12일 현재 3543건, 7338명의 진실규명 신청이 접수되는 등 1기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본격적인 조사도 곧 시작될 예정이다. 과거의 진실을 밝히려는 현재의 열망이 출범 5개월 만에 접수된 7000여 명이라는 숫자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오늘날 인권 발전에 단초가 될 과거사 청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시민 연대의 힘 필요해 

그렇다면 70여 년 전, 길게는 100여 년 전 일어난 국가폭력에 대해 우리는 왜 관심을 가져야 할까? 이화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필자는 졸업 후 아시아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등 국제인권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한국에 돌아와 국내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국내 인권 문제들을 유엔에 제기하는 국제 애드보커시 활동을 주로 담당했다.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제주해군기지 건설,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난무한 상황에도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집회 시위 현장에서의 물대포 사용 등과 같은 공권력 남용,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의 입을 막아온 국가보안법 등 다양한 현안들을 접하다 보니 각기 다르지만, 또 한편으로 비슷하기도 한 이 문제들의 뿌리는 결국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표적인 예로 70여 년 전 분단으로 시작된 ‘빨갱이 담론’은 제주 4·3과 여순사건을 지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이 ‘빨갱이’라는 이름 아래 학살당했으며 오늘날에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쉽게 ‘빨갱이’로 불린다. 전쟁 당시 북에 협력했다는 명목 아래 이뤄진 대규모의 학살, 군부독재 시절의 조작 간첩 사건 등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한국 현대사의 현재 진행형인 비극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인권을 이야기하는 우리는 과거사 청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국가폭력의 진실이 밝혀지고 제대로 청산되어야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국제 인권 운동을 하던 필자는 2017년 말, 제주에 내려가 (사)제주다크투어라는 비영리 사단법인을 만들어 여행을 통해 오감으로 제주4·3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제주도 내 600~800개에 달하는 4·3 유적지들을 함께 찾아다니며 기억을 전승하는 것은 향후 비슷한 국가폭력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단초가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사)제주다크투어의 4·3 기행은 4·3뿐만이 아니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 나아가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오키나와와 대만 2.28 사건 등 동아시아의 평화 문제까지도 함께 다뤘다. 미얀마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처럼 현재 일어나고 있는 4·3과 비슷한 국가폭력 문제에도 연대하며 제주를 넘어 다른 지역에서의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활동도 이어갔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이를 바탕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제주4·3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국가폭력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피해생존자와 유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피해자들의 오랜 싸움이 외롭지 않도록, 피해자들이 오랜 시간 물어온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주어진 과제다. 앞으로 짧게는 3년, 길게는 4년간 존속할 진실화해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으려면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사회에서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말 대신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 기억’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의 과거사 청산은 과연 어디까지 와있을까. 나는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힘을 믿는다. 아무리 끔찍한 폭력이라고 해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 연대의 힘을 믿는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이화인들도 오랜 시간 외롭게 싸워온 피해자들에게 곁을 내어주기를, 야만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도록 연대의 손을 잡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해 나가는 일에 함께 마음을 모은다면 분명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백가윤(정외·06년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비서실장

前) (사)제주다크투어 대표,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FORUM-ASIA 동아시아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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