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저자

 

유은정(의학·96년졸) 정신과전문의·서초좋은의원 원장
유은정(의학·96년졸) 정신과전문의·서초좋은의원 원장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예민해?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자신의 무례함을 상대의 예민함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배려 없음을 상대의 옹졸함으로 역전시키는 상황. 관계에선 정서적으로 주도권을 쥐는 사람이 가해자, 그렇지 못한 사람이 피해자가 된다. 상대방을 착취하거나 주도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너를 위해’라며 시작한 말이 ‘나를 위해’로 끝나게 된다.

필자도 작년에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야’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야, 이제 책 좀 그만 써. 아직도 쓸 게 그렇게 많니?” 병원 직원들도 마찬가지. “원장님, 책 또 냈어요? 언제 또 쓰셨어요?” 4년 만의 책 출간인데,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특별한 의도 없이 무심코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공격을 당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 필자 역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끌어내린 적이 있을 수 있다. 피해자도 언제든 말 한마디로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예민해도 문제, 너무 둔감해도 문제다. 적정선이 필요하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사회 트렌드 변화에 매우 둔감한 탓에, 불편해하거나 때론 외면하기까지 한다. 트렌드를 읽고 세상을 읽는 눈은 필요하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관계에서 지나치게 예민해 에너지 소모가 크다. 그러다 보면 점점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지고 공동체로부터 멀어진다. 불의는 참지만, 분노는 참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적잖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사회적 거리두기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두기도 균형 있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따로 또 같이’를 실천하는 현명한 개인주의자가 돼야 한다.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상처받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자존감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하면서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 친구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고서 알게 된 사실은, 안타깝지만 이들의 상처는 자기 스스로 만든 것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를 이만큼이나 생각하는데, 너는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지?” 관계에 서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친구, 착한 딸, 멋진 선배, 능력 있는 동료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다 상대에게 내가 해준 만큼 돌려받지 못하면 혼자 상처받곤 한다. 이것은 내가 상대에게 한 만큼 그 역시 그대로 돌려주리라는 ‘기대’가 만든 상처다. 사람의 관계에도 패턴이라는 게 있어서 한 번 취하는 사람은 계속 취하고, 빼앗기는 사람은 계속 잃는다.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 내가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때로는 나에게 돌아오는 게 상처와 실망뿐이라면 굳이 그 인연을 끌고 갈 필요 없다고 조언하고 싶다. 나는 나를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거절해도 괜찮다. 가끔은 상대의 기대를 외면해도 괜찮고, 한 번쯤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지금껏 친절했던 당신이 조금 변했다고 외면할 사람이라면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 떠날 수 있다. 타인에게 집착하고 혼자 상처받지 말기를, 당신은 지금보다 더욱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유은정(의학·96년졸) 정신과전문의·서초좋은의원 원장

 

키워드

#이화:연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