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편집자주|‘배꽃서재’는 이화인이 작성한 서평을 싣는 코너입니다. 이대학보 메일(hakbo@ewha.ac.kr)로 글을 보내주시면 선별해 신문에 소개합니다. 게재된 글은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서해영(커미·17)
서해영(커미·1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하층민의 비극적인 삶을 묘사한 소설로 1970년대 무허가 주택 주민들과 노동자 인권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하층민과 대비되는 자본가들의 삶을 통해 극심한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소설 속 주인공인 김불이네 가족은 가난한 삶 속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무허가로 살던 집이 철거되면서 은강으로 쫓겨나게 된다.

김불이네 가족들은 개인의 차원에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기만 했다. 애초에 김불이네 가족이 겪는 어려움들은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 것일까? 최소한의 주거지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노동법이 있으나 제대로 된 임금도 못 받고 인권을 침해당하는 사람들, 이들은 마땅히 국가가 보호해야하는 국민들이다. 그러나 국가가 보호는커녕 오히려 권력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집행하고 있었다.

‘무허가 주택’.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주택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허가된 주거지는 어디에 있는가? 은강도 나중에 재개발된다면 김불이네 가족은 또 쫓겨날 것이다. 만약 국가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기본권을 보장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무허가 주택 주민들도 당연히 합법적으로 집을 지어 살았을 것이다. 국민들이 무허가로 집을 지어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결국 국가의 책임이다.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고 인권을 착취한 자본가들은 ‘허가’하면서 약자들의 보금자리는 ‘허가’하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1970년대의 국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처럼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야할 책임이 있는 국가는 그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자본가의 편에 서서 하층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방관해왔다. 그런 국가가 행복동에서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쫓아낼 권리가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무허가 주택이 불법이라는 점이었다. 마음으로는 김불이네 가족들이 너무 안쓰럽고 살 곳을 잃은 것도 안타까웠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무허가 주택은 불법이니까 행복동에 계속 사는 것이 그들의 권리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무언가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이 감정을 곱씹어 보니 어쩌면 우리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하는 것은 기계적 중립, 혹은 강자의 논리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깨달았다. 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부당함보다, 무허가 주택에서 집을 짓고 사는 불법행위가 마음에 걸린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기계적으로 중립을 외친 꼴인 셈이었다.

어쩌면 이처럼 기득권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김불이가 말한 사랑이 없는 세상일지 모른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게 되면 우리는 기득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는 기득권자들의 배를 더 불려주고 약자의 현실은 외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나의 눈을 가리고 있던 기득권자의 시선을 벗겨내고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던 진실을 마주하게 한 책이다. 약자의 현실과 권리에 무감각했던 혹은 무지했던 사람들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서해영(커미·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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