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번씩 불쑥 불쑥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내게 찾아온다. 이유없이 일상을 탈피하고 싶은 이때는 하루가 괴로움이고 삶은 인고의 연속이다.

이를 인생 노잼시기 혹은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한다. 대개 하기 싫은 일은 뒤로 미루고, 당장 먹고 싶은 것을 먹어치우는 의지박약 상태라고도 불리운다. 눈 앞에 있는 만족감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는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하기 전 진짜 후회할 자신 없는지 내게 물었다. 그땐 그러지 않겠다고 답하고서 나중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렸었다.

번아웃이 올 정도로 열심히 했나 하는 의문도 생긴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노력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것은 엄살이라며 더 열심히 해보려 했다. 결과는 당연히 더 안 좋았다. 도망갈 곳을 모색하는 시간을 더 길게 할 뿐이었다.

이 ‘번아웃’ 친구가 귀엽게도 너무 자주 찾아오다 보니, 대책을 세워야 했다. 첫 번째 단계는 지금이 ‘번아웃기’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항상 이렇게 힘들다가 다시 재미있는 일상으로 돌아왔었다. 끝이 어딘지 알아도 힘든 건 매한가지지만, 아주 약간의 위안이 된다는 점에서 이 단계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단계에선 이 시기를 유용하게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 언젠가부터 번아웃이 올 때면 글을 썼다. 글을 썼다는 것보다 써재낀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우울하고 감수성이 풍부할 때 지금 드는 감정을 다 들이부어 버린다. 메모장, 한글 문서, 블로그, 나와의 카톡이 가득 쌓일 때까지 틈만 나면 적는다. 그렇게 쓴 글을 나중에 읽어 보면, 생각보다 잘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솔직한 감정을 토해내니 솔직하고 담백한 글이 써졌고, 사소한 것에 짜증이 나면서 의미부여를 하니 평소 보지 못했던 시각이 트이기도 했다. 착란 상태에서 시를 쓴다는 나태주 시인이나, 이별할 때 가사가 나온다는 가수의 말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정말로 영감을 주는가 보다. 쓴 글들은 나중에 과제를 할 때나, 자기소개서에 유용하게 쓰였다.

결국 해답은 번아웃 시기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나 책에서 주는 뻔한 교훈인데 실제 삶에 적용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은 행복을 무너뜨리는 문제아 취급을 받다가 나중에는 행복이라는 맹목의 행로에서 숨통이 트이게 하는 중요한 감정으로 급부상한다. 내가 슬픔이나 우울을 중요한 감정이라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정말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슬픔은 인생에 꼭 필요하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나 자신이 납득할만한 근거가 없다면 부정적인 마음들을 긍정적으로 소비하기는 원체 힘들다. 나의 경우, 슬픔의 연속인 번아웃 증후군이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던 순간부터 번아웃은 아주 소중하게 다가왔다.

도망가자는 단어는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에서 기반한다. 행복한 낙원을 찾아 헤매봤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내 친구는 이제 도망가자고 속삭이지 않고, 멈추어서 주위를 둘러보라고 속삭이고 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