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사학·18년졸) 레몬헬스케어 백엔드 개발자
김소진(사학·18년졸) 레몬헬스케어 백엔드 개발자

이화인의 성공에 관해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너무도 훌륭한 선후배, 동문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포지션을 달리 잡아보려 한다. 소위 말하는 고시 불합격자의 삶은 어떠한지, 두 번 ‘학고’ 맞고 학점이 2.5가 안 되는 졸업생의 인생은 어떻게 굴러가는지, 사는 도중의 세세한 열정이 어떻게 업(業)으로 이어지는지 경험담을 들려드리겠다. 

왜 고시에 도전했는지는 생략한다. 우리 학교 고시생의 경우 보통 공부를 포스코관에 있는 고시반이나 이른바 대학동 고시촌에 가서 하는 편이다. 나는 둘 다 해봤다. 고시반에서 스터디를 하고 나면 어둑한 포도길을 걸으며 찬 공기 냄새를 맡는 게 그리 좋았다. 본격적으로 고시 공부만 했을 땐 고시촌에서 지냈다. 그 동네는 어찌나 정다운지 거리를 지나면 아까 학원 강의실에서 봤던 사람, 지난달 다닌 독서실 대각선 자리에서 펜 똑딱였던 사람, 펜 똑딱인다고 독서실에 포스트 붙인 사람, 왠지 이화인인 것 같은 사람, 진짜 이화 졸업생인 사람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그 사람들끼리 모여 스터디를 하고 답안지를 쓰고 경쟁과 협력을 반복했다. 고시생과 고시촌의 자세한 ‘썰’은 합격자들이 더욱 소상히 즐겁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생략하겠다.

2차 시험을 세 번 떨어졌다. 햇수로만 4년이 흘렀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해 고시를 접었고, 함께했던 스터디원도 그해 낙방을 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모두 붙었다. 나만 빼고.

모든 고시가 그렇지만 외무고시는 특히 실생활에서는 쓸모가 없다. 굳이 쓸모를 캐보자면 술자리에서 내가 바로 ‘그’ 고시생이다, 하며 썰을 풀 수 있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고시에 실패한 자의 진로는 주로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고시 관련 전공(경제, 법, 정치학 등)을 살려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둘째, 고시 관련 전공으로 공기업에 취직한다. 셋째, 고시 공부를 할 만큼의 끈기와 미리 획득해 둔 전공지식과 학점으로 사기업에 취직한다. 아쉽게도 학점 2.45인 나는 셋 다 해당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것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 열정의 흔적이었고(경제수학, 헌법, 국제정치학, 프로그래밍, 게임레벨) 이 지식을 한데 그러모을 방안은 없어 보였다. 와중에 내가 반평생 열심히 해온 일이 있다면 TV에 나오는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해서 딴짓을 했다는 점인데 그게 누군지는 그다지 명예롭지 않아 비밀에 부친다. 아무튼 유튜브도 있고 트위터도 있는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영상 보려면 작은 수고가 필요했다. 개인 홈페이지라는 물건인데, 내가 그 홈페이지를 만들던 사람이었다. 그게 웹 프로그래밍이었단 건 나중에 깨달았다. 

고심 끝에 가진 패 중 그나마 유망해 보이는 프로그래밍을 골랐다. 때는 4차 산업 붐이 일어나고 있던 2018년 어느 여름이었다. ‘배우면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겠지’라는 계산으로 개발자를 택했다. 어려운 길이겠지만 ‘내가 그래도 고시 공부도 했는데’라는 어쭙잖은 거만함과 무모함의 ‘콜라보’였다.

문과생이 개발자가 되는 자세한 과정은 요즘 책도 많이 나오는지라 간단히 적어보려 한다. 나는 월 50만원을 받으며 6개월간 국비 교육 수업을 들었고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공개 파이썬 강의를 예습해 갔다. 이건 실무 위주라 나름대로 공대 커리큘럼도 검색해가며 전공지식을 보충했다. 정보처리기사 공부와 7, 9급 전산직 이론 공부를 했다. 알고리즘 책도 봤다(‘헬로우 알고리즘’이라는 얇고 재밌는 책을 추천한다). 물론 얄팍한 실력으로 반년 후 카카오 코딩테스트는 떨어졌다. 그런데 얼마 뒤에 조선일보 계열사 개발직 2차 기술면접(이진 탐색법이었는데 당시엔 이름도 모른 채 어찌어찌 풀었다)을 통과하고 최종 합격했다. 사원증이 생겼고 먹고 살길이 생겼다. 

이후 지금의 헬스케어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사실 나는 아직 개발을 잘 못 한다. 일 하나 하려면 여기저기 물어봐야 하고 실수도 많다. 팀장님 인내심은 내 덕에 늘 시험에 든다. 솔직히 공대 출신 개발자에게 밀린다. 4년 혹은 그 이상 시간의 격차가 있으니 당연하고 그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몸으로 부딪치고 마음으로 인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소위 말하는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플러스, 쿠팡, 배달의민족)에 떡하니 입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도는 해보지만 그 문턱 앞에서 잔잔히 고배를 마시고 있다. 코딩테스트를 통과 못 하기도 하고, 임원 면접을 보고 떨어지는 식으로 문턱의 형태도 다양하다. 단기간의 노력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현실적인 벽이 존재한다는 말씀을, 꽉 닫힌 해피엔딩이 아니라 아쉽겠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다. 그러나 그게 나쁘진 않다. 과거 ‘팬질’을 하고 게임을 하고 고시를 했던 것들이 모여 개발자가 되었듯, 지금도 어떤 하루하루가 쌓이고 있다는 점도 동시에 말하고 싶다.

나는 현재 컴퓨터 과학 학위를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 빅데이터 관련 대학원을 진학하고자 한다. 기술 블로그도 소소하게 운영하고 있고, 매일 쓰는 업무일지를 모아 가끔 이력서도 업데이트한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이화란 이름 덕택에 과분한 커리어 제안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니 더 잃을 것도 없으신 분들, 혹은 잃을 것이 많아 보이는 일에 도전하실 분들, 혹은 그 속에서 고난을 견디고 성공을 쟁취하신, 혹은 쟁취하실 이화 동문 여러분들, 나 같은 동문도 있다는 점에 위안과 용기를 얻으셨으면 한다. 이렇게 저렇게 나부껴도 그저 이화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으려 오늘도 우당탕 굴러보고 있으니, 우리 인생 모두 화이팅.

김소진(사학·18년졸) 소니코리아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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