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웹툰 ‘바른연애길잡이’에서 ‘허버허버’라는 표현이 사용돼 논란이 일었다. 해당 표현이 남성혐오적이라며 비난을 받자 작가는 단어를 수정한 뒤 사과문을 올렸다. ‘성경의 역사’ ‘이두나!’와 같은 웹툰에서도 비슷한 공방이 일어났고, 일부 유튜버들도 같은 문제로 고초를 겪었다. 카카오는 해당 표현이 포함된 이모티콘을 판매 종료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허버허버’가 뜨거운 음식을 급하게 먹는 남성의 모습을 희화화하는 맥락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단어의 시초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부재할 뿐만 아니라 신조어로 가득 찬 21세기에 단어가 정말 그러한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는 의문이다. 이 논란을 계기로 남녀 구분 없이 장난스럽게 사용되던 단어는 사상검증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여성혐오 단어는 어떻냐’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논란이 되었던 여성혐오 표현들은 이와 양상이 다르다. 개중 이슈가 되었던 신조어로는 김치녀, 된장녀 등이 있다. 이 단어들은 만들기 전엔 존재할 수 없는 단어로, 의도적으로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표현이다. 비난적인 어조로 특정 집단을 향해서만 사용되는 점에서도 차이를 갖는다.

웹툰 작가 기안84 역시 ‘복학왕’ 속 여성혐오적 연출로 해당 부분을 삭제하고 독자들에게 사과한 적이 있다. 하지만 ‘복학왕’ 속 연출과 ‘바른연애길잡이’의 단어 사용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안84의 웹툰은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연출을 통해 사회풍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N포 세대나 집값 급등으로 인한 내집마련의 어려움을 풍자하는 것이 그 예시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주인공 봉지은이 남성 상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정직원이 된 듯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 해당 내용을 풍자의 소재로 삼는 것은 지극히 의도적이고 차별적이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던 편견을 공고히 하는 점에서 문제성이 짙다.

정치적 단어로서의 혐오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싫어하고 미워함’의 혐오와는 다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혐오표현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으로 정의된다.

'허버허버’가 명백히 남성혐오적인 유래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는 여성혐오 표현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여성혐오 표현처럼 강력한 사회적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혐오표현은 현실 속 공포와 차별로 이어진다.

‘김치녀’, ‘된장녀’를 들은 여성은 그러한 여성처럼 보였을 때 자신에게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위해가 가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오또케’와 같은 표현이나 지나친 성적대상화 역시 마찬가지다. ‘오또케오또케’만 반복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성적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기존의 차별을 재생산하고 여성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실제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해당 논란에서 ‘혐오당하는 집단이 누구인가’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사회적 의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쁘다고 모두 혐오표현으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 ‘그게 그거지’라는 논법은 통하지 않는다.

남초 커뮤니티는 해당 용어에 대한 문제 제기를 남성혐오 웹툰 단죄 운동이라고 칭하며 댓글 테러, 별점 테러 등으로 창작자를 집단공격했다. 도마 위에 오른 작가, 유튜버, 기업은 재빠르게 사과하고 해당 표현이 실린 콘텐츠를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자칭 혐오 받는 자가 손쉽게 말하는 자의 입을 막고 재단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할 뿐이다.

말의 권력, 뉘앙스, 유래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일이다.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아는 것. 그 안의 권력관계를 읽는 것은 중요하다. 다양한 층위와 상황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혐오는 어디에나 상주한다. 21세기 혐오사회, 우리 모두 말의 무게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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